'내 인생이 남들과 같지 않다고 생각됐던 때의, 외딴길로 밀려나 있다는 낭패감/그러나 내 인생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이윽고 그 남다르지 않은 인생들이 남다르지 않게 어우러져 가는 큰길에 줄지어 서서/이 늘비함을 따라 가야 할 뿐 슬며시 도망 나갈 외딴길이 없다는 낭패감.'
이선영 시인이 쓴 '인생'이란 제목의 시 전문입니다. 시인의 삶에 대한 욕심이 예사롭지 않네요. 혼자 외딴길로 밀려나 외롭고 막막해도 낭패고, 큰길에 줄지어 선 무리에서 슬며시 도망 나갈 외딴길이 보이지 않아 너무 답답해서 또 낭패라고 중얼거리고 있으니까요.
이 시를 읽다보니 문득 세월의 먼지가 뽀얗게 쌓인, 초등학교 시절의 삽화 한 장이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십리가 넘는 산골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는데요. 길이 멀고 또 외져서 늘 대여섯 명의 동네 친구들과 똘똘 뭉쳐 몰려다닐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그 등하굣길의 대열에서 튕겨져 나와 외톨이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교내 사생대회에선가, 제 그림이 꽤 높은 등급으로 입상하여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상장을 받았는데 아마도 그게 친구들의 시샘을 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날의 하굣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재생됩니다. 하얗게 쌓인 햇살을 자박자박 밟으며 혼자 걷던 그 길이, 혹시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문득 멈춰서면, 아- 내 숨소리만 쌕쌕 들리던 그 텅 빈 산천. 길가의 작은 풀꽃들이 쫑알거리며 쳐다보고, 아카시아 숲에서 난데없이 뛰쳐나와 내 몸을 수색하던 바람의 행방, 무논 여기저기서 개구리들이 검문하듯이 '너는 누구냐?'고 꽥꽥 울어대고, 고갯마루에서 올려다 본 하늘의 아득한 높이, 흘러가던 구름의 손짓들, 입술을 굳게 다물고 돌아 앉아 있던 산모롱이 바위들…. 몇 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풍경이 눈에 선한 까닭은 왜 일까요? 그 아득하고, 눈물겹고, 쓸쓸하고, 외롭던 … 그 텅 빈 충만한 세상이, 어쩌면 혼자 외딴길로 밀려나지 않았으면 가보지 못했을 세상은 아닐까요?
제 혼자 노니기보다는 남과 어울려야 뭔가 좀 안심이 되는 게 우리의 문화입니다.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사실 굉장히 괴롭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의 길이기도 하다면, 가끔은 내 스스로 세상 모두를 따돌려 버리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요. 길 없는 길을 혼자 걸어가는 길이 깊은 응시와 성찰의 길이 되어 더 넓고 높은 영성의 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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