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국인 여학생이 왜 '우리' 고구려 유적지를 한국인이 구경하러 왔느냐며 이상하게 보더라는군요.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할 청소년들을 위해 역사교육은 반드시 정상화돼야 합니다."
1일 오후 대구시 교육청 대강당에서 3시간 동안 열린 '역사 교육 강화를 위한 교원 연수회'. 400명의 역사 담당 교사들이 자리한 가운데 첫 강연자로 나선 신선호 교육인적자원부 연구사는 역사 교육의 '강화가 아니라 정상화'라는 표현을 써가며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장득진 국사편찬위원회 기획실장도 "요즘 TV 사극 붐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인해 우리 역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정작 학교 현장에서 파급효과가 적다."고 지적했다.
▶국사가 뜨고 있다(?)
2일 오후 대구의 한 대형서점 3층 인문서적 코너. 테마별로 재미있게 풀어낸 역사 관련 서적들이 가득했다. 한국생활사 박물관, 역사신문, 이야기 한국사, 독학국사,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만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등 코너 담당자가 소개한 스테디셀러만도 10여 권이다. 담당 최순영 씨는 "최근 우리 것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이 늘고 있으며 학교 수행평가 자료로 책을 찾는 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역사논술, 역사논술 삼국유사, 역사논술 시리즈 등 역사 논술류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TV 사극을 소재로 한 만화책도 눈길을 끈다. 역사 만화책 경우 2, 3개 출판사에서 같은 소재의 비슷한 책을 내고 있을 정도.
국사 붐은 지난해 11월 첫 시험을 치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비약적인 성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초등학교 수준(6급)에서부터 전문적인 역사 지식, 대학생·일반인(1급)을 대상으로 국사교육편찬위에서 주관하고 있다. 1회 때는 1만 5천여 명이 응시했지만 지난달 말 치러진 2회 때는 2만 7천여 명이 몰려 6개월 만에 응시자 수가 80%가량 늘어났다.
지난해부터 대구에서 청소년 역사 체험 활동단을 운영중인 류민정 씨는 "성과가 좋아 올해는 교사 연수도 기획 중이다. 여름에는 역사캠프에 중·고교생 40명을 모집해 체험학습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국사 교육 붐의 일등 공신은 단연 수도권 대학들의 수능 필수 과목 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이 2010학년도부터 현재 선택과목인 국사를 필수로 하겠다고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여타 대학들도 같은 계획을 내세우고 나온 것. 이대희 대건고 교사는 "결국 시험제도가 바뀌어야 국사 교육도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수능 국사에 근·현대사가 한두 문제씩 나온다면 지금까지 고1 국사 교과서에 수록돼 있어도 다루지 않았던 근·현대사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고, 재량활동 시간 등을 통해 부족한 시수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대접받는 학교 국사교육
그러나 국사는 정작 학교 교육과정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2002년부터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은 중학교 국사를 사회과목의 일부로 통합했다. 기존 교육과정에서는 2, 3학년 때 독립과목으로 주당 2시간씩 다뤘지만 7차로 넘어오면서 2학년 1시간, 3학년 2시간으로 줄어든 것. 초등학교 경우도 국사는 5학년과 6학년 한 학기씩 사회과목의 일부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신선호 연구사는 "이 때문에 중학교 국사 수업을 국사 전공 교사가 가르치는 비율이 59%에 불과한 현실이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국사 부실 교육은 고교 과정에서 더욱 심각하다. 7차에 들어오면서 국사는 1학년 때 종전보다 1시간 적은 주당 2시간씩 배우는 것으로 끝난다. 게다가 사회탐구 선택과목에 한국 근·현대사가 있어 국사 내의 근·현대사 부분은 소홀하게 취급되는 현실. 때문에 자연계열 학생들은 물론 한국 근·현대사를 선택하지 않은 인문계열 학생들조차 근·현대사에 문외한이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교사들은 교육부가 새 교육과정에서 고교 1학년 과정에 국사와 세계사 과목을 통합해 주당 3시간씩으로 늘린다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재 고1은 국사만 해도 주당 2시간으로는 시간이 부족한 판에 세계사 내용까지 합쳐서 3시간으로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
▶국사에 대한 오해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사회탐구 11개 선택과목 중 국사를 선택한 수험생은 인문계열의 22%. 고1 때 국사를 국민공통과목으로 가르치지만 수능시험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내신용 과목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국사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가장 큰 원인은 학생들의 잘못된 선입견 때문. 암기할 것이 많고 어렵다며 학생들이 기피하는데 큰 원인이 있다. 정말 국사는 고달픈 암기과목일까.
강태원 대구과학고 교사는 "역사는 암기과목이 아니라 사고능력을 기르는 공부"라고 단언했다. 그는 "예컨대 수능에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연도 등을 직접적으로 묻는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내용은 제시문에서 다 주어지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하나의 역사적 사안이 가진 전후 과정을 생각해보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고려 귀족에 대해 배웠다면, 귀족의 개념을 이루는 요소는 무엇인지, 귀족 신분의 형성과정은 무엇인지, 귀족 생활의 경제적 토대나 문화는 어떻게 형성됐는지 등을 연관지으면서 따져봐야 한다는 것. 강 교사는 "고조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이 물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전에 과연 국가란 무엇인지, 국가를 이루는 권력·법률·영토·지배구조 등이 고조선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사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희 교사도 "국사는 역사적 상상력과 탐구력을 자극하는 과목"이라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보면 주어진 제시문을 분석, 비판하고 해결해 가는 능력을 중요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 논술 문제처럼 흥선 대원군과 개혁파의 예를 주면서 한미 FTA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사과목 재미있게 하려면
국사가 재미없는 과목이라는 오해가 학생들 탓만은 아니다. 교사들조차 현재의 국정 국사 교과서가 너무 따분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두 영남중 교사는 "우리 국사책은 너무 제도사 위주로 치우쳐 있고 수많은 학문적 성과를 빠짐없이 다루다 보니 어려운 단어의 나열뿐이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따분한 국사책이 바뀌지 않는 한 국사과목이 재미있으려면 교사 개개인이 흥미를 유발하도록 가르치는 방법밖에 없다.
1일 역사 교사 연수에서 수업사례를 발표한 오영국 서변중 교사는 "중1 아이들에게 고인돌이 뭐냐고 물으면 80%가 모른다. 심지어 오래된 사람들의 돌이라는 답변도 있다. 고인돌을 본 적이 없으니 고아놓은 돌, 괸돌이라는 걸 모르는 거다."며 "국사에서 체험식 수업이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그 당시 사람들의 감정을 직접 느껴보도록 하기 위해 역사극 대본을 만들어보게 하거나 역사 뮤지컬을 진행한 결과 학생들이 큰 흥미를 보였다고 말했다. 연극으로 만들어 본 환곡의 문란 경우 오 교사가 직접 극중 인물이 되기도 했다.
하나의 사료에 대해 의문의 꼬리를 이어가게 하거나 사진, 동영상, 실물 자료 등을 소개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것도 좋은 지도 방법. 강태원 교사는 "빗살무늬 토기는 왜 뾰족할까 하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빗살은 왜 그었을까(예술), 불에 구으면 왜 단단해질까(과학), 몇 명이 먹을 밥을 할 수 있을까(수학), 직접 불에 구워보면 어떨까(미술) 등 다양한 체험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가정에서 자녀들과 박물관에 가더라도 그냥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유물 하나를 골라 궁금한 점 10개를 적어보라거나 가장 아름다운 유물을 직접 스케치해보는 기회를 만들어야 국사에 진정한 흥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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