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루아침의 '인생 역전' 10년 지나니 '인생 부도'

90년대초 거액 토지보상금 받은 사람들 지금은?

▲ (사진 위)1988년 8월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된 대구시 북구 태전·관음·읍내동 일대 칠곡1지구 공사 모습.(대구시 제공). (사진 아래)대구시 북구 칠곡지역의 현재 모습.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사진 위)1988년 8월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된 대구시 북구 태전·관음·읍내동 일대 칠곡1지구 공사 모습.(대구시 제공). (사진 아래)대구시 북구 칠곡지역의 현재 모습.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돈'과 '행복'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80년대 말~90년대 초 대구에서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으로 논밭이 수용되면서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많았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획탐사팀은 당시 5억~30억 원씩의 보상금을 받은 주민 30명의 삶을 추적해봤다.

◆돈폭탄을 맞고 보니…

대구시 북구 태전동 관음초교 인근 주택가. 지난 1988년 54만 평에 이르는 농지가 택지(칠곡1지구)로 개발되면서 거액의 보상비를 받은 태전·관음·읍내동 주민들이 집단 이주했던 곳이다.

"처음에는 200가구 정도가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몇십 가구가 채 남지 않았어. 쫄딱 망해 다른 곳으로 옮긴 사람들이 많아. 70∼80% 이상이 재산을 까먹었다고 보면 될 거야."

한 할아버지는 "벼락부자가 됐다고 흥청망청 쓴 사람이 많았지. 두 집 건너 한 집은 싸움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며 혀를 찼다.

당시 이곳에 뿌려진 토지보상금은 모두 1천900억 원. 대대로 전답을 일궈왔던 농부들이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의 돈을 거머쥐면서 마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김모(65) 씨는 "남자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돈 쓸 궁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여자들은 스포츠센터나 미용실로 몰려갔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보상금으로 차를 사자 다음날 8명이 한꺼번에 똑같은 차를 구입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회상했다.

이곳에서 만난 여든 살의 김모 할머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남편 없이 혼자 농사를 짓던 김 할머니는 과수원이 수용되면서 10억 원 남짓되는 보상금을 받았지만 자식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지금은 가진 것이 없다고 했다. "이게 다 보상금 때문이야. 돈이 생기니 우애 좋던 자식들이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싸우고, 이젠 더 가져갈 게 없으니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행운'이 아니라 '독'?

거액의 토지 보상금을 받은 이들 대부분은 가족·친지 간 갈등을 겪었고, 70% 이상이 예전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취재팀이 만난 주민 중 상당수는 토지 보상금이 '행운'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됐다고 했다.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의 경우 ▷자식들에게 과도한 재산분배 ▷사업 및 주식투자 실패 ▷사기·보증 피해 ▷무리한 건물 신축 ▷방탕한 생활 등의 순으로 사례가 다양했다. 또 재산을 날리는 데 걸린 시간이 5년 안팎이라고 답한 이들이 많았다.

북구 칠곡에서 3천여 평의 과수원을 갖고 있다가 보상금 13억 원을 받은 B씨(73)는 자식들에게 돈을 대부분 나누어줬다. 그는 자식들이 노후자금으로 남겨 둔 1억 원까지 가져가려 해 자식 잘못 키운 죄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식들 몰래 다른 사람 명의로 은행에 돈을 예치시키고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외아들에게 보상금을 다 물려줬던 C씨(80)는 아들이 사업실패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오히려 빚을 지면서 집까지 날려버렸다. 아들이 소식을 끊는 바람에 집안에 압류딱지가 붙었고, 몇 년 전 시골로 이사를 갔다.

한 은행 지점장은 "막무가내로 은행에 찾아와 부모의 돈을 내달라며 억지를 부리거나 부모를 앞세워 예치한 돈을 찾아가는 자식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달서구 상인동에서 15억 원의 토지 보상금을 받은 D씨는 토지 사기를 당해 재산 대부분을 날리고 도박 빚까지 져 부인과 이혼하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북구 칠곡에서 10억 원의 보상금을 받은 E씨는 8억 원의 빚을 더내서 빌딩을 짓다가 IMF 때 부도가 났다. 이처럼 무리하게 빌딩 신축을 하다 망한 경우도 3건이나 됐다.

토지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 관계자는 "토지보상을 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당시 보상금이 얼마였는지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현재 생활이 어려운 차남들이 대부분이다. 토지보상금이 가족 간 불신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성공 사례는 많지 않았다.

성서공단 개발로 보상비 16억여 원을 받은 F씨(62·달서구 용산동)는 곧바로 성주군에 평당 5만 원을 주고 9천 평의 토지를 샀다. 그 후 성서지역에 120평의 땅을 구입해 5층짜리 건물을 신축하면서 재산을 몇 배로 불렸다.

지난 92년 칠곡2지구 개발로 30억 원의 보상금을 받은 G씨(59)는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 북구 구암동에 1천500평의 논밭을 샀다. 그러나 2년도 채 되지 않아 인근 지역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3, 4배로 뛰어 더 큰 자산가가 됐다. 이처럼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 외곽지역으로 대토(代土)를 하다 큰 돈을 모은 경우가 4건이나 됐다.

결론적으로 토지보상금으로 '인생역전'을 이룬 사례는 드물었다. 재산을 날리고 인생파탄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고향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가진 이들도 꽤 있었다. 무조건 돈으로만은 행복을 살 수 없었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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