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티베트 라사에서는 아주 특별한 불교 행사가 열렸다. 티베트 3대 사찰의 하나인 세라 사원에서 한국 동포 박준의 씨의 넋을 위로하는 천도제가 열린 것이다. 이날 900여 명의 티베트 스님들 사이에 한국에서 온 4명의 스님이 섞여 있었다. 경남 밀양 표충사 주지 청운 스님과 혜원 스님 등 '박준의 유해 환국팀'이다.
특히 이날 천도제는 청운 스님과 세라 사원의 주지 아왕다짜 림포체 스님이 공동집전했는데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세라 사원에서, 그것도 양국의 스님이 함께 봉행한 천도제의 주인공 박준의는 누구일까?
그는 1996년 93세의 일기로 티베트에서 생을 마쳤다. 구한말 이 땅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고아가 돼 온갖 고초를 겪다가 독립군에 들어가 일본군과 싸우기도 했다. 일본군에 쫓겨 러시아로 들어갔다가 일본 패망 후 만주로 돌아와 조선족 여인과 결혼해 아들까지 낳았으나 다시 국공내전에 휘말려 중국 공산군에 끌려갔다. 그 와중에 처자식을 모두 잃고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할 때 라사로 들어와 티베트 여인과 결혼해 5남매를 두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역만리 타향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온 것이다. 그는 죽으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했다. "유골을 화장해 압록강에라도 뿌리면 바닷물에 실려 고향마을로 갈 것"이란 유언을 남겼다. 유족들은 티베트 전통인 조장(鳥葬) 대신 화장을 해 이제까지 유골을 보관해왔다.
박 씨의 사연은 1996년 매일신문 보도(8월 31일자)로 이미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적이 있다. 한·티베트문화연구원 신근호(영남이공대 교수) 원장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묻힐 뻔한 일이었다. 신 교수는 당시 티베트에서 우연히 박 씨의 사연을 접한 후 10년 세월을 유해 송환에 골몰해왔다. 까다로운 중국 기관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유족의 호적도 조선족으로 변경했다.
수소문 끝에 박 씨의 고향(충남 태안군)도 찾아냈다. 박 씨의 본향이 밀양인 것을 안 청운 스님은 천도제를 자청했다. 이날 유족들은 천도제 내내 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맏딸 박숙분(49·짜상소우) 씨는 "불가능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꿈이 이루어졌다."며 "부디 고향에서 편히 쉬시길 빈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신 원장은 "이제야 어깨가 홀가분해졌다."며 "그간 여러모로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 씨의 유해는 차남 박생(36) 씨의 품에 안겨 귀국, 표충사에서 다시 천도제를 지낸 후 7일 고향 태안군 황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안장된다.
티베트 라사에서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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