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티베트서 독립군 박준의씨 '100년 만의 귀향'

박준의 씨 넋 위로하는 천도제…표충사 주지 등 유해 환국팀 10년만에 결

▲ 천도제를 마친 청운(왼쪽) 스님이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천도제를 마친 청운(왼쪽) 스님이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세라 사원에서 열린 천도제.
▲ 세라 사원에서 열린 천도제.

4일 오후 티베트 라사에서는 아주 특별한 불교 행사가 열렸다. 티베트 3대 사찰의 하나인 세라 사원에서 한국 동포 박준의 씨의 넋을 위로하는 천도제가 열린 것이다. 이날 900여 명의 티베트 스님들 사이에 한국에서 온 4명의 스님이 섞여 있었다. 경남 밀양 표충사 주지 청운 스님과 혜원 스님 등 '박준의 유해 환국팀'이다.

특히 이날 천도제는 청운 스님과 세라 사원의 주지 아왕다짜 림포체 스님이 공동집전했는데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세라 사원에서, 그것도 양국의 스님이 함께 봉행한 천도제의 주인공 박준의는 누구일까?

그는 1996년 93세의 일기로 티베트에서 생을 마쳤다. 구한말 이 땅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고아가 돼 온갖 고초를 겪다가 독립군에 들어가 일본군과 싸우기도 했다. 일본군에 쫓겨 러시아로 들어갔다가 일본 패망 후 만주로 돌아와 조선족 여인과 결혼해 아들까지 낳았으나 다시 국공내전에 휘말려 중국 공산군에 끌려갔다. 그 와중에 처자식을 모두 잃고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할 때 라사로 들어와 티베트 여인과 결혼해 5남매를 두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역만리 타향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온 것이다. 그는 죽으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했다. "유골을 화장해 압록강에라도 뿌리면 바닷물에 실려 고향마을로 갈 것"이란 유언을 남겼다. 유족들은 티베트 전통인 조장(鳥葬) 대신 화장을 해 이제까지 유골을 보관해왔다.

박 씨의 사연은 1996년 매일신문 보도(8월 31일자)로 이미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적이 있다. 한·티베트문화연구원 신근호(영남이공대 교수) 원장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묻힐 뻔한 일이었다. 신 교수는 당시 티베트에서 우연히 박 씨의 사연을 접한 후 10년 세월을 유해 송환에 골몰해왔다. 까다로운 중국 기관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유족의 호적도 조선족으로 변경했다.

수소문 끝에 박 씨의 고향(충남 태안군)도 찾아냈다. 박 씨의 본향이 밀양인 것을 안 청운 스님은 천도제를 자청했다. 이날 유족들은 천도제 내내 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맏딸 박숙분(49·짜상소우) 씨는 "불가능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꿈이 이루어졌다."며 "부디 고향에서 편히 쉬시길 빈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신 원장은 "이제야 어깨가 홀가분해졌다."며 "그간 여러모로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 씨의 유해는 차남 박생(36) 씨의 품에 안겨 귀국, 표충사에서 다시 천도제를 지낸 후 7일 고향 태안군 황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안장된다.

티베트 라사에서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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