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님들을 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님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다/ 함께 스러진 슬픈 님들이어/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 조그만 나라 위해/ 목숨까지 바친 고마운 님들이어/ 지금은 이 낯선 땅/ 돌 위에 새겨진 님들의 이름을/ 바람과 파도가 기도처럼 불러줍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정다운 별로 살아오는 님들/ 지지 않는 그리움이여…/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이 추모시의 일부가 부산 유엔기념공원 추모명비에 새겨져 있다기에 얼마 전 일부러 보러 갔었다. 예전에 해외에서 손님들이 오면 유엔묘지를 꼭 참배하고 싶다고 하여 안내해 준 일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가 보니 참으로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고 기뻤다.
한국전쟁 때 희생된 4천895명의 이름이 나라별로 새겨진 추모명비 앞에서 한참 동안 찡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2천 여기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묘역을 방문한 유족들이 적어 놓고 간 그리움의 메모들도 바람에 실려오는 장미 향기 속에 애틋하고 눈물겨웠다.
어떤 유족들은 병사의 유골을 가져 가려고 안 좋은 마음으로 왔다가 아름답게 꾸며진 공원을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그대로 두고가며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고 한다. 여중 시절 해마다 현충일이면 동작동 국군묘지를 참배하고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쓰게 가르쳤던 담임선생님들의 영향으로 나는 지금도 6월이 되면 전쟁터에서 희생된 군인들, 지금도 하늘에서 바다에서 육지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기로 지향을 갖는다.
어린 시절 전쟁을 직접 겪어서인가 지금도 종종 총소리에 놀라고 어둡고 퀴퀴한 냄새 나는 방공호에 숨어있거나 피란길에 쫓기는 꿈을 꾸기도 한다. 가족 친지들과 트럭을 타고 피란을 왔던 이곳 부산에서 일생을 봉헌하는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문득 신기하게 여겨질 적이 있다.
얼마전 강원도 춘천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 지난 2월에 입대한 조카를 면회하러 갔는데 군부대에서 듣는 뻐꾹새 소리, 무더기로 피어 있는 패랭이꽃들이 유난히 애절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조카는 몸이 10킬로나 빠진 걸로 보아 그간의 훈련이 꽤 고되었던 모양이지만 집에 있을 때보다 안팎으로 훨씬 성숙하고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마를 '어머니'로 호칭하고 모든 말을 다 '습니다' 체로 바꾼 군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음이 새삼 놀랍고 대견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학을 다녀와 서른 다된 나이에 현역으로 입대했으니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 하진 않을까 우려하던 바와는 달리 한결 늠름하고 씩씩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직속상관이 사실은 자기와 나이가 같지만 그래도 서로 잘 지낸다는 것, 입대 전에 듣던 것과는 달리 군 생활이 그렇게까지 힘든 것은 아니고 할 만하다는 것, 예외적인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그냥 남들하고 똑같이 평범하게 지내는 것이 떳떳하고 좋다는 것을 강조하는 그의 말에 나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조카에게 나는 '그래. 권 이병! 쿨한 군인답게 행동해 주어 고맙다. 그렇게 네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렴….'하며 축복의 기도를 해 주었다.
'주님, 이 땅의 모든 군인들이 몸 마음 건강하게 성실하게 맡겨진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자신을 넘어서는 넓은 마음과 동료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으로 나날이 새롭게 무장하는 투철한 투사이게 하소서. 그들의 가족인 우리 또한 변함없는 초록의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보고 싶고 걱정되는 애틋한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씩씩하고 용기있고 절제있고 참을성 많은 '군인정신'으로 우리 또한 일상의 싸움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늘 함께하여 주소서. 아멘.'
이해인(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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