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시끄럽데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어느 날 사교계의 쟁쟁한 인사들이 모이는 한 파티에 참석했다.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자 20여 명의 참석자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대화 상대의 말소리를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시끄러워지자 참석자들은 고함치듯 목청을 높여 온 실내가 소음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런 고상하지 못한 사태를 접한 마크 트웨인이 묘안을 냈다. 옆자리에 앉은 부인에게 자신이 속삭이듯 말을 할 테니까 귀를 바짝 갖다 대고 열심히 듣는 척 해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리고는 어느 파티에서의 해프닝을 재미나게 전해줬다. 이런 마크 트웨인의 '주목전략'은 일시에 소음을 진정시켰고, "모두 한꺼번에 떠들지 말고 한 사람 씩 얘기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했다. "당대의 명사들을 다른 방식으로 설득시키기는 힘들었을 것"이란 마크 트웨인의 자랑스러운 후일담이 덧붙여진다.

요즘의 한국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일화다. 파티장의 20여 명을 선별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의 몇몇 참모들, 이명박 · 박근혜 두 대선주자와 그 핵심측근들, 기타 제 정당 관련인사들과 김대중 전 대통령 이 바로 그들이다. 정치권 바깥사람으로는 별로 초대된 이가 없다. 12월 대선의 집권과 지분에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들만 모였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파티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각자가 마이크로 대화를 하며, 국민들에게 대화내용을 고스란히 공개한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연정, 개헌안 발의 등 좌충우돌의 전력이 말해주듯 대선파티의 초두를 요란하게 장식했다.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취재 지원 선진화 조치'(4월 22일)를 발표해 장내가 떠나갈듯 한 야유를 받은 것이다. 기자들의 90% 이상이 반대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야유가 오히려 잘못 된 것이라며 다른 목소리를 묵살했다. 파티 참석자를 주목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본론인 대선과 관련해서는 초두를 점잖게 여는 듯 했다.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5월 2일의 브리핑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발언이 나오면서 잠깐 새 목소리를 바꿔 지역주의에 영합하는 대세론(5월 19일)을 받아들였다.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는 거기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선 적극 개입(6월 2일)으로 돌변했다. 한나라당이 선거중립 위반이라며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자, 반칙적인 헌법소원 카드로 장내를 위협하고 있다. 대통령의 목소리는 이미 국민들의 귀를 찢는 쇳소리로 변했다.

대통령이 확성기 볼륨을 키우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한나라당의 두 대선주자들이 '검증'을 놓고 맞붙었다. 서로 삿대질을 해가며 벌이는 검증시비는 대통령의 소음 못잖은 역겨움을 자아내고 있다. 국민들의 불편함을 덜어줄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어 보인다. '아름다운 리더십'의 주인공 측이 더 문제다. 실체도 명확치 않은 검증의 잣대를 들고 몇 개월째 핏대를 세웠다.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자가발전 하여 의혹이라 주장하며 상대를 몹쓸 사람이라 몰아 부친다. 지역의 모모 국회의원들이 그 주역을 떠맡았다. 이를 맞받아치는 쪽도 누더기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언제까지 이런 끝없는 소음을 듣고 있어야 하는가. 차라리 대선 당사자가 정치생명을 걸고 속 시원히, 한꺼번에 밝히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싶다. 김대업 사건 이후 네거티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극에 달해 있다. 더 훌륭한 비전과 정책으로, 개인의 가치관과 행동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려들지 않고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자잘한 흠집 내기로 대세를 만회하려 해서는 역사의 주도자가 될 수 없다.

여타 참석자들의 술 취한 모습은 더 이상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 정치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더 이상 볼륨을 조정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다. 민주주의의 과잉이 이런 부작용을 불러왔다. 불현 듯 로크리(Locri;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법이 생각난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수대 밧줄에 목을 걸고 그 취지를 설명한 뒤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거기서 실패하면 그 즉시 목숨을 끊어야 한다. 그런 윤리적 각오도 없이 온갖 독선과 반칙을 구사하며 국민들에게 구정물을 덮어씌우는 게 요즘의 정치권이다. 언제까지 이런 더러운 정치가 계속될 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박진용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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