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방의 창] 병명과 치료

서양의학에서는 진단의 목적이 병의 이름을 결정하는데 있고, 병명이 결정되면 치료 방법이 선택되게 되는데, 어떤 병은 어떻게 치료하면 된다는 것이 실험에 의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병 이름을 결정하는 것이 반드시 치료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의학에서는 병명을 몰라도 치료에 조금도 불편이 없건만 요즈음에는 서양의학의 영향 탓인지, 환자들이 모두 자기의 병명을 알고 싶어하여 한의학에서도 병의 이름을 명명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병의 이름이 풍(風)아니면 화(火), 담(痰), 때로는 습담(濕痰), 담화(痰火), 냉(冷), 체(滯), 기부족(氣不足), 혈허(血虛)니 하는 것들이다.

이런 병명의 표현을 듣게 되면 지식인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한의학을 멸시하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풍(風), 화(火), 냉(冷), 체(滯)니 하는 것은 병명으로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다. 뇌신경병이 '풍', 대사기능장애가 '습', 신경통이나 류마티즘이 '담'이라는 것 보다 더 좋은 그럴 듯한 병명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한방병명이 더 편리할 수 있다. 병명은 질병을 서술하고 구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개념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으로 곧 치료방법을 결정할 수 없다. 병명을 알지 못하면 치료를 하지 못하는 의학, 병명에 의해 치료방법이 고정된 의학은 환자 개개인의 특질을 무시할 염려가 많다.

그러므로 아직도 병명이 명명되지 않은 질병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만큼, 알지 못하는 질병에 이미 알려진 병명을 붙이고, 그 알려진 병에 쓰던 치료방법을 그냥 적용한다면 거기에는 큰 무리가 따를 것이다.

개개인은 체질이라는 것이 있어 병명은 같아도 증세가 다를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병명에 의지하여 치료를 일률적으로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정 호(테마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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