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이영양증으로 진료 받고 있는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를 강의하는 공학도다. 조갑이영양증이란 손톱이나 발톱이 비뚤어지거나 선이 생기거나 변색되면서 올바른 모양으로 자라지 않는 질환의 총체적인 병명이다.
조갑은 직접적인 혈액공급이 없어서 호전이 아주 느려 대개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장기간 치료를 요하므로 대단한 인내를 요한다. 처음에 내원할 때 그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ㄱ처방에는 차도가 없었고 ㄴ처방에는 조금 호전이 있었으나 식욕이 증강하였고 ㄷ처방은 졸음이 왔고 ㄹ처방은 효과는 느려도 부작용이 없으니 그 약을 처방해 달라고 수첩을 펴들고 브리핑을 하는데 대단히 당혹스러웠다.
그는 공학도에 걸맞게 뛰어난 과학적 사고력과 추론으로 병의 경과나 약에 대한 반응을 기술하였고 전공의들의 병력기록지를 보는 듯 소상히 그리고 전문적으로 나열하였다. 이런 환자를 만날 때 생명에 지장이 없고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나의 진료방침이다. 고분고분 그가 나에게 처방해준 약을 처방전에 옮겨 주었다, 그가 제시한 ㄹ처방은 위험부담은 없지만 진척이 없는 무사안일의 소심한 약이다. 그가 나를 믿어 주기만 하면 나는 그 약을 처방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그러던 중 자신이 미국 학회에 다녀왔다면서 조그만 열쇠고리를 하나 내밀면서
"제 손톱 같은 병은 학회에서 연구 안하나요?"라며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긴 것 같다. 놓치지 않고 그가 좋아하는 대로 최근 논문 한편을 제시하면서 다른 약을 처방할 것을 제시하였다. 처방을 바꾼 후 그는 차후 치료 방향이나 선택, 예후에 대한 의견은 당황스러울 만큼 순한 양이 되어 나의 지침을 따랐다.
끝까지 다 자라지 못하고 부서진 손톱 밑으로 드러난 맨살을 아까워하던 그가 어제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진료실을 들어와 일갈을 토했다.
"원장님 저도 손톱 밑에 때 끼었어요!!"
정현주(고운미 피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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