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나도 기자'코너의 시민기자는 정범용(44) 씨는 현재 광고기획사 애드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10여년 전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작품을 수집해 온 미술컬렉터입니다. 최 씨는 현재의 미술 열풍에 대해 미술을 대중화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향기를 향유하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하지만 자본에 의해 예술의 가치가 왜곡될 수 있는 우려가 있어 이를 짚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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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이라더니 광풍이란다. 몰려드는 컬렉터와 자금에 미술계는 유사 이래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가을을 기점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미술시장은 올 5월 들어 더욱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질주 중이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1회차 낙찰금액이 100억 원을 돌파했다고 떠들썩하더니 급기야 낙찰총액 200억 원 돌파 소식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지금 한국은 어떠한 학문적 담론이나 경향보다도 단연코 투자이야기가 미술계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절정을 우리는 지난 5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를 통해 뜨겁게 확인했다. 개막 전 솔드아웃(매진)이나 웨이팅 리스트(대기명단)가 얼마라는 이야기쯤은 이제 시시한 뉴스거리가 됐다. KIAF조직위가 공식발표한 175억 원의 판매액을 두고서도 오히려 '기대 이하'라는 반응이 나왔다는 것도 현재 미술시장을 체감하게 하는 한 가지 예다.
◇ 급격하게 활황세로 돌아선 까닭은?
199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 간 긴 침체에 빠져있던 미술시장이 이처럼 급격하게 활황세로 돌아선 까닭은 무엇일까? 그 첫 실마리를 풀어준 것은 국내경기의 회복이 아닐까 싶다. 실물미술에 있어서 시중자본의 여유만큼 더한 호재는 없다. 주머니가 넉넉해진 사람들이 고급스러운 취미와 기호품을 찾으면서 미술품 수요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극소수 돈 많은 사람들만의 영역으로 여겼던 미술품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지면서 일반 시민들과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급격하게 미술시장으로 유입돤 것도 한 요인. 소득 2만 달러를 넘으면 본격화 한다는 문화수요 예측논리가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 시작한 미술시장에 박차를 가해 전 국민을 서(畵)테크(?) 열풍에 달뜨게 한 일등공신은 역시 메이저 갤러리들과 미술품 경매 회사들이다. 자금에 여유가 생긴 갤러리들은 홍보용 전시를 기획하는가 하면, 쾰른'시카코'바젤 등 국제아트페어에 꾸준히 참가함으로써 세계를 향한 진출을 본격화했다. 아울러 미술시장 활황의 가장 큰 주역으로 양대 경매회사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의 공격적 경영은 금융자본을 미술시장으로 일순간에 끌어들여 미술의 경제적 외연을 크게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술 분야도 금융자본과 계획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각인시킨 것이야말로 이들 경매회사들의 공이다.
◇ 고고한 예술로서 품위는 어디로?
그런데 최근의 미술시장은 그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적잖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미술이 지나치게 자본논리로 흘러 미술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투자가치에만 몰두할 뿐 작품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고고한 예술이었던 미술은 이제 오로지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투자 상품으로만 존재할 뿐.
"이 그림 돈 됩니까?", "강남 쪽에서 특히 인기가 있어 환금성으로 따지자면 최고입니다.",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큰손들이 매집하니 지금 한 점 잡아두시죠!" 최근 화랑가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대화들이다.
미술에 돈이 개입되는 현상은 긍'부정의 여부를 떠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자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지만 과도한 자금의 개입은 미술시장 전체를 왜곡시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것도 좋지만 미술 고유의 본질과 역할을 훼손하지 않는 범주에서 이뤄져야 하건만, 돈이라는 것의 힘이 워낙 막강하기에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인 것이다.
누가 뭐래도 미술은 투자대상의 상품이기에 전에 삶을 위안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가장 순수한 예술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추억하고자 또는 지극한 아름다움에 끌려 한 점의 그림을 소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술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나 사명감으로 컬렉션을 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돈보다 더 값진, 미술의 '다정다감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모처럼 관심이 커진 미술시장을 잘 가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술에 있어서 돈이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는 것도 자금의 순기능을 전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함도 물론이다. 미술시장의 흥행이 '문화산업의 꽃'이 될 것인지, 아니면 누구의 말대로 '허영의 불꽃놀이'가 될 것지는 순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언론 보도 행태가 미술시장 기형화 낳아
미술과 작가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도 우려스럽다. 최근 기사를 보면 TV나 신문을 막론하고 여러 기자들이 동일한 취재원을 상대로 기사를 썼다고 느낄 만큼 똑같은 내용 일색이다. 이것은 어떤 작가에게는 특혜를, 다른 경우에는 상대적 피해를 준다. 가령 어떤 매체에 작가평이 실리면, 그 기사를 모범답안으로 다른 매체가 옮겨가고, 옮겨진 그 이야기를 또 다른 매체가 확대 재생산한다. 이런 와중에 작가와 작품의 본질은 호도된다.
지난 키아프 개막전을 스케치한 언론사들의 보도 기사에서도 이런 사례를 어렵잖게 찾아 볼 수 있다. 모든 매체들은 한결같이 김동유, 이수동, 임만혁, 최소영 등 인기 작가의 매진 사례를 대서특필했다. 동일한 작가들을 동시다발로 집중 보도하다보니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작가들의 성과를 확실히 알게 됐다. 그런데 이들 못지않은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은 작가들도 많았다. 조현화랑에서 출품한 사진작가 권부문 선생이 그러한 예다, 자극적이거나 특이한 소재가 아니면 뜨기 어려운 최근의 미술시장 분위기 속에서 전작 매진의 커다란 성과를 거뒀는데도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 묻지마식 컬렉터들도 문제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명성은 종종 독성을 품고 있다더니, 미술품이야말로 명성에 집중하는 폐해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는 분야인 듯하다. 언론에서 주목하는 작가의 작품을 구하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 같아 정신적 공황이 온다는 컬렉터를 본 적이 있다. 명성을 좇아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이면 퀄리티와는 상관없이 싹쓸이하는 묻지마식 컬렉터, 자신의 안목과 취향보다는 입소문에 기대어 빈 캔버스마저 입도선매하는 무개념 컬렉터, 구하겠다고 마음먹은 작품은 작가의 화실에 틀거지하고서라도 얻어 내는 빨판 컬렉터들도 수없이 많다. 이들 또한 미술시장의 왜곡에 단단히 한 몫 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미술이야말로 인류의 마지막 럭셔리(사치)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자존감을 확인하는 방편으로 미술만한 것이 없다고도 한다, 좀 더 솔직하기로는 지겹도록 즐기고도 자산 가치를 보장받는 미술품이야말로 투자가치로서는 제격이라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고 일리 있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자기자신의 능동적 선택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지한 컬렉터가 되려면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미술시장에는 왕도가 없다. 직접 공부하는 것 뿐이다."라고 한 리차드 폴스키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정범용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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