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뉴욕 소더비에서 열린 '컨템퍼러리 낮 경매'에서 한국의 이우환(71) 화백의 1978년작 '점으로부터'가 194만 4천 달러(약 18억원)에 팔리는 진기록을 낳았다. 이 작품은 당초 40만∼60만달러의 추정가가 붙었으나, 실제 경매에서는 그 4∼5배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 새 주인을 찾은 것. 이 낙찰가는 박수근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한국 작가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이다.
이후 갑자기 미술 시장에서는 이우환 화백 작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 화백의 초기작 20여점을 가지고 있는 대구의 모 컬렉터는 요즘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라고.
한 컬렉터는 "2~3년 전만 해도 8천만원 선에 거래됐던 이우환 화백의 선 시리즈의 경우 지금은 10억을 호가하는 것까지 나올 정도"라며 "앞으로 더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내 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젊은 작가들의 그림에 대한 수요도 폭발적이다. 대구 출신의 구상화가 도성욱, 이정웅, 윤병락 씨의 경우 얼마전 서울에서 연 전시회가 솔드아웃(매진)되기도 했다.
대백프라자 갤러리 김태곤 큐레이터는 "예전에는 큐레이터들이 미술컬렉터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작품을 설명하고, 구매을 강권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된 상태"라며 "일부 작가의 경우 구매자들이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불붙고 있는 미술시장의 한 단면이다.
◇ 대구 미술시장은?
대구의 미술시장은 '한강 이남 최대'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 외에 대구만큼 많은 작가를 배출하고 많은 전시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서울 등지에서도 많은 미술 콜렉터(전문 수집가)들이 대구를 방문,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랑의 숫자도 40여개로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제일 많다.
하지만 아직 대구는 미술 작품 구매력에 있어 다른 도시에 뒤쳐지는 편. 미술시장이 불붙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어 매진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곽훈, 유봉상 등 이름있는 작가들을 초대해 기획전을 열어봐도 판매율은 기대치를 밑돈다.
이는 아직까지 대구 사람들은 미술작품을 구매하고 감상하는 것을 일부 돈 많은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서울에 비해서는 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말이다.
한편에서는 최근 미술 시장이 투기 목적으로 뛰어든 신흥 컬렉터들에 의해 가격이 폭등하다보니 대구의 기존 컬렉터들은 잠시 구매를 늦추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한 컬렉터는 "서울의 대형 화랑들이 대구에 내려와 이수동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매집해 3~4배의 수익을 남기고 판다는 소문을 자주 듣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그림을 사기란 부담이 너무 크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대구 시장이 서울에 비해 정보가 늦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팔릴만한 작가의 작품을 알아보고 기획해 전시회를 열어야 하지만 이미 '상품'이 부족해서 못팔 지경인 서울에서 선점해 버려 '살 만한' 전시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 천방지축 그림 가격
도대체 그림의 가격은 누가 결정하고, 그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미술 초보자들이 흔히 품게되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이 없다. 부동산 시세처럼 대강의 선은 정해져 있지만 그림 가격은 변동 폭이 워낙 크다.
'호당 가격'도 큰 의미가 없다. 가격이 반드시 크기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30호까지 소품은 호당가격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고, 30~50호까지 중간 크기 작품은 호당 가격의 70%선, 80~100호까지 대형 작품은 50% 선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강의 선일 뿐. 크기 구분을 위해 호수로 구분할 뿐 그림의 예술성이나 구매자 기호, 미술사적 위상 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그림값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사는 사람의 취향'이다. 원하는 작품을 손에 넣을 때 지불하는 돈이 바로 가격이 된다. 반대로 그림을 파는 입장이 되면 '사는 사람의 취향'은 오히려 불편하게 작용한다.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작품이라도 기호와 취향이 맞아 떨어지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제 값을 받기 어렵다. 그만큼 현금화도 쉽지 않다.
일단 현재 미술 시장은 활황을 넘어 광풍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잠시 조정을 거치겠지만 앞으로 최소 5년 이상 현재보다 최대 15배 이상 미술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김태곤 큐레이터는 "인간은 어느 정도 부를 이루면 부유함보다는 우아함과 교양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문화 산업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한국의 경우 국가의 경제 규모나 잠재 능력에 비해 미술품 가격이 저평가 돼 있는 탓에 그 속도에 완급은 있을지언정 경제규모에 걸맞는 지점까지 미술시장은 상승세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 어떤 작품을 사야할까
최근 유행하는 화풍은 '극사실화'다. 세밀한 묘사를 통해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작품을 일컫는 말.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정말 잘 그렸다!"는 감탄사가 터져나올 정도로 테크닉이 뛰어난 그림이다.
이광호 갤러리신라 관장은 "그간 비구상화 일색이던 미술계에 경매회사들이 생겨나면서 급작스레 극사실화가 유행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너도 나도 '서(書)테크'에 뛰어들면서 미술에 대한 상식을 갖추지 못한 일반인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림들이 인기를 끌게 됐다는 것. 이 관장은 "조만간 다시 비구상화 계열의 그림들이 득세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극사실화의 유행은 대중 취향에 영합하기 위한 일시적인 붐일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김태곤 큐레이터는 조금 다른 분석을 내놨다. 예술에 대한 회귀 본능이라고 진단한 김 큐레이터는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림으로 옮겨놓고 싶어하는 원초적인 습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극사실화 경향은 과거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했다. 예전 구상 미술에서 목가적인 측면이 강조됐다면, 요즘은 인물이나 사물 등이 극단적으로 부각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림 투자를 위해 어떤 그림을 사야할까? 추세에 맞춰 극사실화 계열의 그림을 사야할 지, 아니면 눈에 익숙하지 않은 낯선 그림이라도 미래 가치를 감안해 도전해야 할 지 의문이다. 김 큐레이터는 "지금 분위기라면 어느 쪽에 투자하든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그림 시장에 대한 충분한 식견을 갖고 장래성 있는 그림을 산다면 구상화, 비구상화를 가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 미술에 투자하고 싶으신가요?
그림, 사 놓으면 무조건 돈이 된다고 유혹의 손길을 뻗쳐오지만 그것도 그림 나름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비해 환금성도 떨어지고,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요모조모 꼼꼼히 따져보고 충분히 공부한 후 도전해야 하는 것이 미술품 투자. 하지만 무엇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미술에 대한 애정이다. 진정 그림을 좋아하지 않으면 작품의 제대로 된 가치를 음미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투자자, 애호가? = 정말 그림이 좋아서 미술품을 사는지를 자문해 봐야 한다. 매매차익만을 노리는 '묻지마 투자'는 위험하다. 진정 미술 작품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꼭 매매차익이 없더라도 미술품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를 충분히 노릴 수 있는 것이다.
△미술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라 = 그림을 사고 싶다고 해서 바로 구매를 하지 말고 일단은 서점으로 뛰어가 미술사 책을 한권 사 보라. 철저하게 준비하고 꾸준히 공부해 작가와 그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만 올바른 미술품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달 월급 수준으로 시작하라 = 지금 시장이 호황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싼 그림을 사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초보자라면 100만~300만원 대의 비교적 저가 작품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컬렉션을 계속하다보면 안목이 길러지고 어느 순간은 초기 구매 작품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 때 '수업료'로 지불해도 큰 손해가 없을 정도의 그림을 사는 것이 적절하다.
△젊은 작가에 주목하라 = 최근 국내 미술시장의 흐름은 기존 유명작가 중심에서 신진작가로 옮겨가고 있다. 신진작가의 경우 가격이 비교적 싼 편이어서 부담 없이 그림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장점과 언젠가는 전설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투자가치가 높다. 자신의 취향에 맞고, 가격이 막 오르기 시작한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골라보면 좋다.
△여유를 갖고 멀리 보고 투자하라 = 미술은 주식과는 다르다. 짧은 기간에 수익을 노리고 뛰어든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구매를 결심할 때는 장기간 집에 소장하고 있을 마음의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 집에 두고 감상하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그 작가의 명성이 한껏 뛰어오르는 날이 올 것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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