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폭력배들이 매일 행패를 부려 업소 문까지 닫았어요."
대구 성서에서 노래방을 운영했던 김모(45) 씨는 그때를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지난해 말 덩치 큰 청년 3명이 매일 밤 찾아와 공짜 술을 마시고는 "이 동네에 사는데 몰라? 오늘 출소했어."라고 위협했다. 참다못한 김 씨는 이들을 경찰에 신고하고 보복이 두려워 전업할 수밖에 없었다.
중구에서 직업소개소를 하는 박모(57) 씨는 "험상궂은 청년 두 명이 찾아와 빈 지갑을 보여 주더니 '돈을 채워 달라'며 행패를 부려 20만원을 뜯겼다."고 했다. 노래방 업주 박모(52) 씨는 청년들이 찾아와 '이 동네에서 생활하는 ○○○'라며 행패를 부려 추위가 지나갔는데도 난방용 석유를 억지로 사야 했다.
서민들의 피를 빠는 갈취형 폭력배들이 활개치고 있다. 규율이 있는 조직폭력배보다는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동네폭력배들이 훨씬 더 무섭다.
◆동네폭력배 활개
업소 등에 찾아가 문신을 보여주고 '우리 애들을 일하게 해달라.' '불법 영업을 묵인해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게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쇼핑몰을 돌며 보호비를 요구하고 개업한 유흥업소, 이발소 등에서 돈을 뜯거나 무전취식을 한다.
성서지역 동네폭력배 A씨(34)는 "할 일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니 매일밤 술 마시고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 다닌다. 우리는 유흥업소, 노래방 등에서 일어나는 골치아픈 일을 해결해준다. 이웃끼리 같이 먹고 살면 좋은 일이 아닌가."라고 했다.
동네폭력배는 자신들이 자란 동네에서 설치기 때문에 주민생활과 밀접하다. 큰 돈은 요구하지 않고 공짜 술을 마시고 푼돈을 거둬간다. 피해자들은 억울하긴 하지만, 안면 때문에 신고하기도 그렇고 나 몰라라하기도 어렵다. 대구경찰청이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 4월 말까지 조직폭력배 특별단속을 벌여 175명을 검거했으나 그 중 88명이 동네폭력배였다.
◆동폭의 전성시대?
90년대 초 당국이 조직폭력배 일제 단속을 벌이면서 기존 조직이 와해된 틈을 타 동네폭력배들이 속속 생겨났다. 계보를 거느린 대조직이 아닌 탓에 쉽게 생겨나고, 쉽게 없어지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조직폭력배 A씨(36)는 "우리들은 유일하게 전쟁을 해본 몇 안 되는 조직이다. 성내(城內·향촌동·동성로파 등) 식구들은 경찰들도 긴장할 정도로 우월감이 있다."며 "우리와 지저분한 동네 건달을 같은 부류로 보지 말라."고 했다. 조직폭력배는 유흥업소 등에서 돈을 뜯지 않고, 목 좋은 자리가 있으면 가게를 차리거나 대리인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대구경찰청은 조직폭력배 12개파 조직원 318명보다는 단속 사정권에 들어있지 않은 동네폭력배를 더 큰 골칫거리로 보고 있다. 김광년 폭력계장은 "동네폭력배도 규율과 강령이 있는 조직폭력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전과가 거의 없고 관리대상에 올라있지 않아 신상 파악이 어렵다."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했다.
또 경찰이 2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구대 순찰제도(파출소 3, 4개를 구역별로 묶어 순찰하는 방식)가 동네폭력배 증가에 한몫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제도는 대형 사건·사고 때 신속한 경찰력 투입 등의 장점이 있지만 관할 지역의 순찰기능 약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대구한의대 박동균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 예방의 기본이 순찰인데 현재는 도보 순찰기능이 거의 없어져 경찰들이 시민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순찰제도가 바뀌면서 주민과 경찰 간의 밀착성이 떨어진 것이 동네폭력배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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