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거듭 진화해 온 양준혁

절정기를 보내던 삼성에서 1999년 해태, 이듬해 LG로 팀을 옮기는 등 두 번의 트레이드로 양준혁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과거에 안주하려는 근성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고 느낀 것이 첫 깨달음이었고 변화를 두려워하면 가진 것마저 잃는다는 것이 두 번째 깨달음이었다. LG로 둥지를 튼 뒤에는 존재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비로소 자신의 뒤를 돌아 보게 되었다.

큰 키에 어깨가 떡 벌어져 다소 뻣뻣해 보이는 인상과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은 팀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는 시도 속에 달라져갔다. 변화에 따른 현실적인 인식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서른에 달한 그는 변모해 갔다.

FA로 다시 삼성으로 돌아온 첫해 양준혁의 타율은 2할7푼6리에 머물렀다. 팀은 우승했지만 그는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프로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3할대 밑으로 떨어졌고 온갖 구설수에 시달렸다.

그러나 성숙해진 만큼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정체해 있으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고 그것이 곧 퇴보라고 생각해 같은 방식으로서는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는 마음속에서 과거 잘 나가던 양준혁을 지워버렸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자 비로소 현실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고 편해졌다. 자신을 돌아보다 절정기의 만세타법에서 해답을 얻은 양준혁은 그 해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만세타법을 새로이 다듬었다.

부활에 성공했지만 2005년 시즌엔 또 한번 추락(0.261)의 고통을 겪었다. 30대 중반의 나이. '이제 한계에 이른 것인가' 스스로 반문했다. 모든 상품이 시대에 맞춰 업그레이드 되듯이 스스로에게도 능력 개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베테랑이었지만 자기 개발을 회피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허물을 벗지 못하면 자신을 정확히 볼 수 없고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역시 본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태어나서 한번도 바꾸지 않았던 오픈 스탠스를 크로스 스탠스로 과감히 바꾸었다. 일본프로야구의 전설 왕정치가 외다리타법을 익히기 위해 어둠 속에서 진검으로 짚단을 수없이 베는 훈련을 한 것처럼 피나는 노력 끝에 새로운 타격 자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심정수는 나이가 들면 허리등의 순발력이 감소된다는 얘기에 양준혁 선배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못치는 것이 아니라 못치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것이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양준혁은 늘 마음속의 허상을 벗어 던졌고 믿음 그대로 실천했다.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배가 부르다. 그러면 나는 쉴 곳을 찾게 될 뿐이다." 절정기에 삼성을 떠나면서 찾아왔던 정신적 방황은 그렇게 거목을 키운 거름이 되었다. 스스로를 분석하는 통찰력과 끝없는 야구 열정이야말로 그를 오늘에 이르게 한 비결인 것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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