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대한민국 이야기/ 이영훈 지음/ 기파랑 펴냄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혹시, 친일파와 친미 사대주의자들이 협력해 세운 것이 대한민국이고, 따라서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민족정기는 피폐됐다는 인식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YS정부 시절 '역사 바로 세우기'나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 역시 이 같은 인식에 바탕을 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합니다. 한 나라가 잘못 세워졌다는 주장이 나라 밖이 아니라 나라 안에서, 그것도 명망있는 학자들에 의해서, 심지어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서 제기되는 일은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모든 나라는 자기 나라가 정의로운 역사에 기초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국가가 잘못한 일은 비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회와 국가의 도덕 수준을 높이기 위한 성찰의 일환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많은 우리 국민들이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된 데는 베스트셀러 '해방전후사의 인식'(1979~1989·한길사)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0, 1990년대 대학생들 중에 읽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니까요. 이 책은 한마디로 해방전후사를 좌파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한 결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오늘 소개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대한민국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원래 2006년 2월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알기 쉽게 풀어쓴 것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해방전후사를 재해석한 국내외의 학술논문을 모아놓은 것인데, 1·2권 합해 1천500쪽이나 되는 데다 어렵고 전문적이어서 통독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동안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교과서 삼아 한국의 근·현대사를 바라보고, 배우고, 가르치던 이념적 현실 속에서, 일종의 소수그룹 연구자들의 논문을 모아놓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수만 권이나 팔려나갔다는 것은 출판계의 이변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조금 알기 쉽게' '읽기 쉽게' 책을 다시 써달라는 요청이 잇따른 것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왜곡된 '상식'이 아니라 '진실'을 통해 바라보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대한민국 이야기'는 해방 이후 남·북한의 지배적 국가이념으로 자리 잡은 '민족주의'를 해체하고 분별력 있는 이기심을 본성으로 하는 '인간개체'를 역사 서술의 기본 단위로 하고 있습니다. 민족이란 일본에서 수입된 개념으로 20세기 들어 조선인들이 일제의 식민지 억압을 받으면서 발견한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일 뿐이기 때문이랍니다.
백두산은 언제부터 민족의 영산이었나? 환경파괴와 경제위기로 인한 조선의 패망, 식민지 수탈설의 진실, 위안부와 정신대가 다르다, 일제가 남긴 유산, 분단의 원인과 책임, 한국전쟁, 천황제를 계승한 수령체제, 초대 대통령 이승만 등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근·현대사는 상식을 뒤엎는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또 구소련의 붕괴에 따라 공개된 비밀문서를 통해 그동안 상식이 됐던 좌파 민족주자의 주장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자 의도대로 평범한 소시민의 삶의 이야기로 역사의 기초를 바꾸어 놓으면, 지난 20세기는 한반도에서 국가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심각한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시대로 다시 태어납니다.
전통문명과 외래문명이 충돌하고 접합하는 문명사의 대전환 과정이었던 셈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이 어렵고 힘든 시련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해졌으며, 경제적으로는 풍요해졌고, 빈곤과 질병의 굴레에서 해방됐습니다. '부끄러운' 근·현대사가 '자랑스런' 근·현대사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80, 199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고 심취했던 분이나 대학생들에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대한민국 이야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시다면, 서로 다른 관점의 두 책을 함께 비교해 읽어보는 것도 대한민국 재발견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328쪽, 1만 3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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