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퀴한 냄새, 책장 넘기는 소리, 또각또각 구두소리, 휴대폰 진동 소리….
대학시절 도서관은 단조로운 음악 같았다. 가끔 물건이 분실되거나 붙박이 수험생이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새로운 도서관 커플이 탄생했다거나 하는 소식이 단조로운 도서관 생활에 활력이라면 활력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이 전쟁터로 바뀔 때가 있다. 시험기간이 코앞에 닥치면, 사람들이 도서관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우직한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새벽같이 도서관 문 열기를 기다려 여자친구 자리까지 잡아주는 사람을 '도자기'라 했던가. '도서관 자리잡아주는 자기'란 뜻이다. 도자기 하나 없는 우리는 그저 일찍 도서관에 나오는 수밖에 없다. 도서관 자리가 거의 다 차 가는 시간 즈음이면 누구 할거 없이 도서관 앞에서 뛰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도 모자라 이제 뛰기 시작하면 앞뒤 사람들도 덩달아 뛴다. 그렇게 슬라이딩하듯 도서관 자리잡기에 성공하면 그 날은 성공한 날! 그렇다고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일찍 자리잡아놓고도 너무 일찍 일어나 엎드려 잠이 들거나 친구와 눈이 맞아 커피 마시러 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면 빈자리를 메뚜기처럼 오가는 학생들도 있다. 빈자리를 골라 잠시 앉아 책을 폈다가 주인이 오면 서둘러 자리를 비켜준다. '메뚜기족'은 시험이 코앞에 닥친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TV로 보던 대학 도서관은 낭만의 공간이었지만 실제론 전혀 딴판이었다. 여학생들은 화장도 안하고 머리를 질끈 매고 엎드려 잠을 자고 남학생은 냄새나는 양말을 만지작거리며 먼 산을 본다. 오히려 이성에 대한 환상이 확 깨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도서관이 그립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마냥 불안했지만, 우리는 그 불안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지영(대구 수성구 범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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