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지금의 나를 있게한 산골학교 도서관

전교생이래야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학교에 도서실은 꽤 컸었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버린 첩첩산골 속의 학교도서실이었지만, 나의 꿈을 영글게 해준 곳이었다. 유난히 병약하고 성격조차 소심한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외톨이었다. 지금의 기억에도 꽤 잘생긴 총각선생님이 부임해오셨고, 내게 도서실 담당자라는 직책을 주셨다. 그때부터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후 틈만 나면 도서실은 내 아지트가 되어 있었다.

푸른 초원에서 양떼들 사이를 뛰어 노는 붉은 뺨을 가진 알프스 소녀 하이디, 불쌍한 소공녀 세라, 빨간 머리 앤 등 동화책 속의 이국 소녀들은 내 친구가 되었다.

그 시절 시골의 아이들은 방과후 부모님의 일손을 한몫 거드는 쓸 만한 일꾼들이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조금 깨우친 분들이라서, 늦으면 으레 책을 보려니 하며 꾸중을 안 하셨다. 그런 부모님덕택에 서쪽 창가에 붉은 노을이 질 때까지 도서실은 내 차지였다.

중학교 때 교수님을 아버지로 둔 친구 집에 간 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서재를 보았다. 가정집에도 책이 이렇게 많을 수도 있구나 하는 그 부러움과 신선한 충격에 난 웬만하면 책을 사서 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책을 소장하여 여러 번 보다보니 20대에 읽은 감상과 40대에 읽은 감상은 틀릴 수도 있었다.

내 아이들을 위하여 많은 책들을 꽂아놓은 서재를 꾸며놔도, 애들은 도무지 책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요즘에는 당장 더 자극적인 컴퓨터 게임, 다양한 채널이 있는 TV가 방해물이 되는지 예전의 우리들처럼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유년시절은 책 외에는 마땅한 놀거리가 없어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래도 책읽기를 좋아해서인지 학창 시절에는 문학소녀 흉내도 냈었고, 40대 중반이 되어 있는 지금도 괴발새발 글 쓰기를 좋아한다.

우리 집 작은 도서실에 있는 책들은 시간이 더 흐른 뒤, 책이 필요한 시골 학교에 기증하리라는 소망을 품어 보며 오늘 책을 읽는다.

허미진(대구시 달서구 이곡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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