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직단이 평리동에 있었다?'
우리나라 임금이 백성들을 위해 토신(土神)인 '사(社)'와 곡신(穀神)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인 사직단(社稷壇)이 대구 평리동에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이곳은 재건축 작업이 진행 중인 신평리아파트 뒤편으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지구'로 지정돼 있어 개발될 경우 사직단 형태가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적잖아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
사직단이 있다고 제기된 곳은 대구 서구 평리4동 1314 일원. 이곳은 1999년 정부의 새주소 사업에 따라 길 이름을 '사직당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엔 대부분 낡은 주택과 빌라, 원룸 등이 들어서 있어 터를 찾기엔 역부족이다. 김양태 서구청 지적과장은 "새주소사업 초기에 위원들이 오래 살았던 주민들의 얘기를 토대로 새 길이름을 지었고, 새이름 부여 이유에도 '종묘사직당이 있었음'으로 돼 있다."며 "'사직단'이 '사직당'이 된 것은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다 생긴 오류로 보인다."고 말했다.
평리동 사직단에 대한 내용은 이미 많은 문헌에 나타나 있다. '대구읍지'에는 '사직단이 대구부(현 경상감영공원)에서 서쪽으로 7리(약 2.7㎞) 떨어진 평산(坪山)에 있다. 재실을 만들어 승려로 하여금 지키고 보호하게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삼일출판사의 '역사 속의 달구벌을 찾아서'에는 '동국여지승람에 서구지역은 농사와 관련된 토신과 곡신을 모시는 사직단이 있었다.'라고 쓰여있고, '경상도읍지' '여지도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현재 대구에는 달성군의 '현풍사직단'과 수성구 노변동의 '경산사직단' 2곳이 있지만 이는 엄밀히 대구시로 편입되기 전의 사직단이어서 실제 대구부의 사직단이 평리동이 맞다면 대구 유일의 사직단이 발견되는 셈이다. 경산사직단은 지난해 4월 대구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됐다.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곽중섭 향토문화해설가는 "조선시대 평리동 일대는 평야지대로 논, 밭과 저수지가 많아 농사에 적합한 지역이었다."며 "만약 재개발이 이뤄져 당시 형태가 나타난다면 이를 복원해 문화유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사직단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나라를 창건하면 왕가의 선조를 받드는 종묘(宗廟)와 더불어 지은 것으로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종묘사직이 망한다'는 말로 비유할 만큼 문화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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