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가 끝날 무렵이다. 운동장 건너편의 산 그림자가 서서히 밀려오고 있다. 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 해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나도 모르게 창문을 열어젖혔다. 남풍을 타고 갑자기 밀려드는 향긋한 아카시아 꽃향기. 혼자 느끼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어 교실 창문을 모두 열어 보라고 했으나 학생들은 반응이 없다. 무슨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했더니 "옆 친구가 방귀를 뀌었다."는 둥 서로 쳐다보고 낄낄대기만 할 뿐이다.
계절의 변화나 꽃향기도 잊은 채로 하루를 보내는 학생들이다. 대학입시 준비에 혼이 빠져 있으니 언제 꽃향기에 심취할 겨를이나 있겠는가.
나의 학창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집 뒤편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담장처럼 둘러 있었는데, 그 언덕배기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었다. 이때쯤 내 방의 뒷문을 열면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어 마치 흰 눈이 덮인 듯했고 꽃향기도 대단했다.
고향 마을에는 과수원도 많았다. 봄이 되면 살구꽃이 꽃구름을 이루어 지붕을 덮었고, 복숭아꽃이 눈부시도록 피어 마을 전체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꽃에서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했다. 늘 장래 문제에 대해 걱정하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니, 계절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지라도 그것을 완상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는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다. 들일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에는 자주 참꽃 다발이나 복숭아꽃 가지를 꺾어 왔다. 예쁜 화병 대신에 큰 병이나 투박한 항아리에 꽂아 두었다. 그래도 나는 번번이 그 꽃의 아름다움에 젖어들지 못했고 어머니의 마음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시골 분위기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바쁘고 힘든 생활에서 언제 꽃을 꽂아놓을 여유가 있는지 의아하기조차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농사일과 집안일로 무척 힘들게 지내셨다. 그런 중에도 그렇게 꽃을 좋아한 어머니의 마음은 어쩌면 고독과 고난의 질곡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한 당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은 그때가 아닌 먼 훗날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7년이 지났다. 타계하시기 전 약 스무 해 동안은 힘든 농사일을 그만두고 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살았다. 며느리까지 직장에 나가다 보니 어린 손자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야 하는 바쁜 일상이었지만, 어머니는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었다.
당신의 피붙이들을 그 옛날의 꽃보다 더 사랑하셨다. 한결 풍족한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일부러 꽃을 사다가 집에 장식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의 시간을 문득문득 가지게 되면서 비로소 나는 어머니와 꽃의 의미를 조금은 헤아릴 수가 있었다. 인간을 보듬고 있는 자연은 행복한 사람에게는 기쁨을 더해 주고 고독한 사람에게는 위안이 되어 주지만, 바쁘고 고달픈 사람들에게는 꽃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발길을 학교 앞 동산으로 향했다. 온 산이 아카시아 꽃으로 가득하다.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어릴 적에는 입에다 따다 넣던 그 꽃이다. 이제는 바라보기만 하여도 배가 부른 꽃이 되었다. 그저 진한 꽃향기에 젖어들고 싶었다.
관심이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해마다 아카시아 꽃은 아름답게 피고 꽃향기가 진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야 비로소 나의 꽃이 되고 나의 향기가 되다니. 지금까지 무엇이 나에게 이 아름다움과 향기마저도 잊고 살게 하였을까?
책과 씨름하며 계절의 변화마저 잊고 사는 우리 학생들은 언제 이 아름다운 꽃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을는지…. 오늘도 아카시아는 저 혼자서 앞동산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조병렬(수필가.경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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