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대통령 막말에 더 '쪽팔리는' 국민

선거법과 야당 대선 후보들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이 쏟아내는 발언들이 체통마저 망각한 것 같아 안타깝다. 8일 원광대에서 열린 명예 박사학위 수여식 후 특강에서 노 대통령은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며 "선거법은 위선적 제도"라며 거침없이 반박하고 나섰다. 율사 출신의 대통령이라 하고싶은 말이 오죽 많겠나만은 국가기관과 대다수 국민들의 판단과 인식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거듭 변명하는 것같아 안쓰러울 따름이다.

대통령이 선관위'야당 대선후보 등에 무차별적으로 던지는 발언들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배꼽을 잡게 하고 청량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國基(국기)에 대한 조롱이나 모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도깨비방망이로 돈 만드나, 흥부박씨가 어디서 날아오나, 속지 말라"며 비아냥댔다. 또 "후진국에서나 하는 5년 단임제, 한마디로 쪽팔린다"며 비속어까지 동원해 '대한민국=후진국'으로 묵사발내고 있다. 이 같은 대통령의 막말에 그저 가슴이 답답해질 뿐이다.

백번 양보해 노 대통령의 해석대로 우리 선거법에 모호한 구석이 있어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발언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치자. 대통령이 분별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국민 정서에 어긋날지도 모르고 국민들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해보지 않는가.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발언에 혀를 차고 있는데도 선거법이 위선적이라며 스스로 두둔하고 나서는 것은 결코 곱게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무가 없는 미국에서도 현직 대통령이 대선 후보들을 비난한다면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힐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말하고 있다.

악법도 법이고, 잘못된 결정도 결정이다. 대통령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대놓고 "위헌" 운운하며 반박하는 것은 국가 기본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정치권의 지적대로 선거중립 구성요건이 모호하다는 점을 문제 삼아 선관위 결정을 무시하고 선거운동을 계속한다면 여간 문제가 심각한 것이 아니다. 선관위 결정은 결정대로 존중하고, 모호한 부분은 별도로 정리하는 성숙한 자세가 아쉽다. 우리의 대통령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 유감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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