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해양 생명산업의 잠재성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1970년대 '소년세계'라는 어린이 잡지를 구입하면 그 부록으로 여러 권의 만화책을 앙증맞은 크기로 제본하여 끼워주곤 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 것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질 베른이 쓴 '해저 2만리'란 만화책이다.

아로낙스 박사가 괴잠수함 노틸러스호를 타게 되고, 네모 함장과 함께 시작된 해저여행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바다 속의 정경, 난파된 배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귀한 보물, 그리고 잃어버린 도시 아틀란티스 등을 읽어가며 마음속으로 상상했던 세계가 지천명의 나이에도 진한 감흥으로 남아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그에 따른 식량부족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며 불현듯 바다를 떠올렸다. 지구표면의 약 70%를 차지하는 바다 속에 무궁무진한 자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그저 바다는 원유와 광물자원의 보고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2010년경에는 해양산업의 총생산 규모가 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며, 그 중에서도 생명공학 분야가 차지하는 규모가 약 30%에 달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나름대로의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식량자원, 신약, 기능성 신소재, 산업용 효소 등 수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바다는 한마디로 거대한 생산 공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는 산업발전과 더불어 나타나는 지상자원의 고갈 속도를 고려할 때 바다가 주는 잠재성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연간 1억t 이상의 물고기를 인간이 이용하고 있는 것 하나로도 바다는 식량을 생산하는 거대한 농장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지금까지 우리가 활용한 범위는 첨단 기기장비를 이용한 고기잡이나 양식업 정도이다.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육종 기술을 중요 어류에 적용한다면 개체 수의 증가뿐만 아니라 급속생장이나 몸집이 10배 100배 큰 슈퍼 물고기의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 나아가서는 해수 온도 변화에 따라 사라져 가는 어종의 경우 저온 혹은 고온에서 생존 가능한 유전자를 이식시킴으로써 온대지역에서 열대수종의 어장화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식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물고기 중에서 지방함량이 극히 높은 어종은 간단한 유전자조작을 통해 그 기능을 조금 더 향상시킴으로써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청정 바이오에너지의 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심해 미생물이 전체의 0.1%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미 산업적인 규모의 항생제(Cephalosporins), 항암제(Cytarabine), 그리고 진통제(Ziconofide) 등 수많은 신약이 개발된 바 있다.

수중 생물의 분해자 역할을 하는 일부 세균이나 곰팡이들에 관한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한다면 향후 각종 중금속이나 유해물질로 신음하는 지구촌의 토양 및 대기환경 정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산야에서 자라는 식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많은 해택을 심해에서 자라고 있는 녹조류, 갈조류, 그리고 황조류 등의 수중식물에서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바다가 주는 혜택이야말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표현해야 할 듯싶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통합적인 해양관리 시스템을 운용한 지 오래되었으며, 일본이나 소련 등에서도 해저 탐사 및 심해 생물에 관한 연구가 몇 십 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미시시피 대학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가 심해 과학연구소의 경우 하와이·알래스카·푸에르토리코·괌·사이판·사모아 등지의 해양 생물자원으로부터 약 2천 점이 넘는 추출물질 뱅크(bank)를 만들어 산업화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마다 장마 때면 각종 산업폐기물이나 오염물질이 바다로 유입되어 녹조 등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우리도 미래의 보석이 될 수 있는 바다의 환경을 보존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생명공학 산업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손성호(동양대 생명화학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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