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꽃으로 먹고살다시피하는 네덜란드도 17세기 전 국민이 튤립 투기 狂風(광풍)에 빠져들면서 교역과 농업 등 경제기반이 폭삭 무너지고 주도권을 쥐고 있던 해외시장을 경쟁국 영국에 내주고 만 아픈 역사가 있다.
1630년 무렵 네덜란드에는 튤립 球根(구근) 한두 개쯤 소장하고 있어야 '교양 있는 신사' 대접을 받는다는 이상한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튤립을 소유함으로써 사회적 지위와 신분 상승을 꾀했고 시간이 지나자 하급계층 사람들까지 전 재산의 절반을 털어서라도 튤립 구근을 구해 상류 '클럽'에 끼어들려는 풍조가 성행했다.
단순히 꽃을 애호하는 취미 수준에서 시작된 튤립 열풍이 점차 신분 상승이란 욕구충족과 금이나 은보다 더 나은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변하면서 꽃사랑이 투기 광풍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투기 바람 속에 튤립 구근 40개를 사기 위해 10만 '플로린'이란 거금을 투자하는 '꾼'들도 나타났다. 당시 황소 한 마리가 100플로린이었다니까 튤립 구근 투기에 황소 1천 마리 값을 '베팅'한 셈이다.
유행 따라 해군 제독의 이름이 붙여진 희귀 튤립들은 비옥한 농토나 심지어 가옥 등과 맞바꿔 轉賣(전매)를 거듭하며 천정부지로 값이 올라갔다. 어느 날 전문꾼들은 튤립 값이 꼭대기까지 올랐다는 걸 감지하고 대량으로 되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격은 떨어지고 튤립시장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집을 팔아 튤립을 갖고 있던 하급계층 사람들은 소위 상투를 잡아 전국에 파산자가 속출했다.
'투기열풍 기간 중에 사고판 계약은 무효'라는 억지 주장까지 나오고 전국 방방곡곡 말도 안 되는 어거지 소송이 줄을 이어 이웃과 친구들이 원수가 됐다. 온 나라가 뒤흔들린 것이다. 튤립 광풍의 와중에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결국 네덜란드 자신이었다. 온 나라가 튤립 투기에 정신이 팔려 교역감소, 농업 생산성 쇠퇴를 방치하고 있을 동안 이웃나라들이 해외시장을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돈을 좀 벌기 시작하더니 17세기 튤립 열풍 같은 광풍이 불고 있는 모양이다. 보이차(푸얼차) 세트가 2억 원에 팔리고, 蘭(난) 한 포기를 1억 6천만 원에 사는 신흥부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2억짜리 보이차는 무게를 기준하면 金(금)값의 60배가 넘는다. 증권시장에도 광풍이 불었다. 직장인은 물론이고 주부들까지 몰려 하루 새 수십만 명이 새 계좌를 열고 있다.
'중국 난 박람회'에는 4만 명의 난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12억 원어치를 사고팔았다고 한다. 茶(차) 사는 데 황소 50마리 값을 투자한 21세기 중국 사람의 베팅이 튤립 구근 1개 사는 데 황소 25마리 값을 베팅한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보다 한술 더 뜬 것 같지만 광풍이란 점에서는 오십보백보다.
네덜란드 튤립 광풍의 끝이 국민들의 파산과 얽히고설킨 맞소송에 의한 반목, 분열 그리고 국가경제 基層(기층)의 붕괴였다면 중국 신흥부자들이 부풀린 버블과 우리의 신도시 광풍도 예사로운 조짐은 아니다. 이미 우리 돈 수조 원도 거품이 낀 중국펀드시장에 베팅돼있고 혁신도시, 행정도시, 동탄 등 신도시 바람을 타고 수십조 원의 보상비 등 투기자본이 도처에 땅과 펀드를 타깃으로 출렁댄다. 서울의 유명그림전시장에는 그림도 안 보고 전화로 '무조건 사겠다'는 주문이 쇄도, 한번 전시에 300억 원어치가 매진되기도 했다.
튤립과 난의 광풍을 돌아보면서 혹 우리도 땅과 아파트와 그림과 해외펀드에 온전한 정신을 뺏긴 채 광풍 속에 휘둘려가는 것은 아닌지 추슬러 볼 일이다.
광풍은 비정상적으로 부는 바람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지도자의 언행이 사춘기의 어깃장 부리듯 한 것도 正常(정상)이 아니고 맥주병 던지던 국회의원의 '아니면 그만'식의 루머 폭로도 정상은 아니다. 광풍이다. 여기저기 광풍이 불수록 국민들 마음이라도 平常心(평상심)을 지켜야 한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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