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대로를 타고 팔달교 쪽으로 달리다가 신천교지하도를 벗어나면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건너다보이는 건물에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라는 간판이 눈에 띕니다. 그 지점을 지나갈 때마다 저는 무심결에 제 이름을 중얼거려 보게 되는데요.
언젠가, 시내 달성공원 앞에서 성명철학관을 하는 역술인 친구한테, 자네가 무슨 심오한 철학이나 있어 남의 이름을 지어 주고 돈을 받아 챙기느냐고 비아냥거렸더니, 침을 튀기며 대학의 음성학 강의실에서 듣던 말들을 쏟아내는데 결코 녹녹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동안 자신을 대신하는 고유명사로서 이름을 갖게 되며, 이 이름은 소리 즉 음의 파장으로서 그 소리를 평생 동안 듣고 사는 본인한테 기로 작용하여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주팔자나 관상을 보아 90세 이상 장수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도 그 이름을 파열음과 마찰음이 마구 뒤섞인 소리로 성정에 어울리지 않게 붙여주면 수명까지 단축될 수 있다나요.
얼마 전 신설 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교가 작사를 부탁받았을 때 문득 그 성명철학관의 간판 글씨가 떠올랐습니다. 아침조회 시간이나 입학식 또는 졸업식 등 행사 때마다, 그리고 운동장에서의 열띤 응원가로 그 학교 학생들이 함께 외쳐 부르는 소리가 바로 교가라면, 이 소리 또한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 아닌가, 잘못 지어진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을 구겨놓듯이 잘못 만들어진 교가도 그 교가를 부르며 자라는 학생들에게 기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좋은 교가를 지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우선 인터넷을 뒤져 전국의 수십 개 학교의 교가를 찾아 자세히 읽어 보았는데요.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며 또 함부로 지어진 교가가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가사의 소리구조가 아름답고도 서늘하고, 서로의 배움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우는 뜻이 사과의 단맛처럼 잘 스며 있고, 학생들의 몸짓에 꼭 맞는 가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교가, 그런 교가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학창시절에 익힌 훌륭한 교가는 가슴속에 아름다운 소리로 새겨지는가 봅니다. 지난 토요일, 학교 총동창회 모임에 갔었는데, 기별 배구시합을 하기 전에 강당에서 진행된 기념식 끝 언저리에 교가를 부르는 순서가 있었는데요. 정말 오랜만에 교가를 부르는 순간, 그 노랫말과 가락이 강물처럼, 바다처럼 출렁이며 옛날 그 교정의 젊은 시간을 눈앞에 펼치는데,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어느 소리가 이처럼 또 힘이 있겠습니까?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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