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래 살다 보면 나무와 친하게 된다. 산에는 많은 나무가 있지만 그 중에 소나무가 으뜸이다. 사철 내내 푸른 상록수로 겨울의 혹한을 이기는 데는 소나무가 최고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비록 단풍나무처럼 잎이 알록달록한 채색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서슴없이 소나무가 나무의 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소나무는 청산의 주인이다. 소나무가 없으면 산이 청산이 되지 못한다. 예로부터 소나무를 군자의 지조에 비유하여 나무로서의 품격을 높여 왔지만 소나무가 산에 많이 있음으로써 산의 품격 또한 높아지는 것이다.
주자가 '만고청산유마청(萬古靑山唯磨靑)'이라 하여 '만고에 청산은 오직 푸름만 빚고 있다.'고 했지만 이는 소나무의 덕을 통해 한 말이다. 또 소나무를 벗하여 살기를 원했던 절사(節士)나 은자(隱者)가 많았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기며 고매한 인격을 갖춘 위인들이 소나무를 벗삼아 여생을 마친 경우가 많다.
당나라 때 반사정(潘師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은둔자가 되어 소요곡(逍遙谷)이라는 골짜기에 살고 있었는데 황제가 그를 불러 관직을 내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반사정은 "울창한 소나무와 맑은 샘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라며 끝내 벼슬길을 사양했다고 한다.
내가 사는 암자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층층이 서 있다. 해발 1,060m의 영축산 산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오는 등성이마다 수백 년의 수령을 가진 아름드리 소나무가 층층이 서 있어 청산의 정서를 흠뻑 느낄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소나무들이 지난해에 모두 주사를 맞았다. 지금도 이 소나무들 둥치에는 명찰 같은 표가 붙어 있다. 아마 주사를 맞은 나무라는 표시를 해 둔 모양이다. 재선충이 번져 피해를 입을 위험이 크다 하여 시에서 방제책으로 실시한 소나무 주사였다.
강원도 등지에 소나무 재선충 피해가 많다는 보도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산림청에서 대책에 부심하고 있겠지만 소나무가 죽어간다면 청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신문보도를 보니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산림의 소나무 중 30% 정도가 사라졌다고 했다.
아열대성 기후 변화로 소나무의 성장이 장애를 받고 있고, 이런 추세로 간다면 소나무가 멸종될 위기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나무가 없어진다니 산에 사는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다. '소나무야! 끝까지 살아남아 청산의 임자가 되어 다오.' 소나무에게 바라는 나의 간절한 축원이다.
지안 스님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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