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이언스 레터)한국의 노벨상을 기다리며

2006년 노벨상 수상자들.
2006년 노벨상 수상자들.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이 발발하기 바로 전 해인 1949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유카와 히데키라는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 후 일본은 지금까지 과학 분야에서만 노벨상을 9회나 수상하였고 문학상 2회와 평화상 1회를 합하면 총 12회로 아시아권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을 뛰어넘자는 말을 자주 들어왔던 나로서는 이러한 일본의 노벨상 수상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신설학과였던 유전공학과에 지원한 동기란 게 과학을 하여 노벨상을 한번 받아보자는 유치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러한 생각은 나이가 들어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에 일본의 노벨상 수상은 솔직히 배가 아픈 구석이 있다.

요즈음 이공계 이탈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건 굳이 언론을 통하지 않더라도 이미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육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 IMF 이후 가속되기 시작한 의약학과로의 쏠림 현상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연구소 등 과학기술계에서 일하던 친구나 선후배가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마자 자리를 잃고 힘들어하던 모습을 지켜본 나로서는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공계에 가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다.

물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놓여 있는 게 내가 사는 한국의 현재라고 한다면 정말 우려할 만한 상황이 머잖아 펼쳐질지도 모른다. 과학고를 졸업한 학생들의 대부분이 의대로 몰리고 이공계에 진학한 학생들이 취직이 잘 되는 학과로 전과하거나 아니면 사법시험 등 각종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게 현실이고 보면 이러한 우려는 전혀 기우가 아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포항제철, 그리고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나 제너럴일렉트릭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말해주듯 현재 전 세계는 과학기술이 곧 힘이고 돈이 되는 세상이다.

과학의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과학자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들었지만 나는 과학자 한 명이 십만 명도 넘는 인구를 먹여 살릴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일개 회사가 컴퓨터 운영체제 하나로 미국의 경제지표에 영향을 준다고 할 만큼 과학은 돈이 되는 분야임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연구 인력의 축소와 의대 쏠림 현상의 기폭제가 되었던 IMF 외환위기는 앞으로 지금까지의 어려움보다 훨씬 더 큰 시련으로 닥쳐올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노벨상을 정말 바란다. 서구 편향, 남녀 차별, 한탕주의 등 노벨상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많지만 우리가 경제 부국을 향한 과학 기술의 한국을 꿈꾼다면, 그러기 위해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지원을 기대한다면 한국의 노벨상 수상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인간은 어떤 대상을 가질 때 이것을 상대하여 인식활동을 한다. 이러한 인식은 의지가 되고, 노력이 되고, 환경을 만든다. 대상을 갖지 못하는 한 우리는 관념만을 가질 뿐이고, 관념은 추상에서 맴돌게 된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꿈을 갖지 못하거나 미래에 회의적인 젊은 학생들에게 꿈이 실현되는 구체적인 대상이 된다. 그 대상은 과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꿈이 그저 꿈이 아니고 구체적인 미래로 인식될 것이다. 나아가 돈 되는 사업에만 투자하는 기업이나 연구소, 의대만 목표로 하는 학생, 자식을 의사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학부모들 모두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의 실재에서 사고의 전환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그로부터 이공계를 지원하는 그 어떤 천재가 다시 제2, 제3의 노벨상을 거머쥐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비약적인 생각일까.

차정록(차선생 과학아카데미 원장)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이를 기업화해 거부가 된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이 '인류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들'에게 시상하라며 유산 약 3천100만 크로네를 스웨덴의 왕립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해 제정된 상. 1901년부터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등 5개 부문에 걸쳐 시상해왔으며 1969년에 경제학상이 추가됐다. 경제학상은 노벨기금과 별도로 스웨덴 국립은행 창립 300주년 기념사업으로 제정됐다.

상은 금메달, 상장, 상금으로 구성되는데 상금은 매년 액수가 다르며 2명 이상이 공동수상할 경우 상금은 분배한다.

지난해까지 미국이 287명으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영국(97), 독일(74), 프랑스(51), 스웨덴(31), 스위스(21), 러시아(17) 등의 순으로 수상자를 냈다. 한국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최초로 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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