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손가정 청소년들, 캄보디아를 가다

"세상 원망했던 나 자신 되돌아 봤어요"

▲ 아이들에게 내밀 과일이 없는 한 소녀가 한국 학생들에게 대나무 잎으로 만든 꽃반지를 손에 끼워주며
▲ 아이들에게 내밀 과일이 없는 한 소녀가 한국 학생들에게 대나무 잎으로 만든 꽃반지를 손에 끼워주며 '1달러'를 요구했다.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소녀는 1달러를 받고 연방 고개를 조아렸다. 1달러는 이 아이의 하루 끼니 값이다. 소녀가 만든 반지와 소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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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달러만 달라.\"고 외치는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 주변 마을의 아이들. 1달러는 이들의 하루 생활비다.
▲ 6~9일 3박4일 일정으로 캄보디아 문화체험에 나선 결손가정의 청소년들이 앙코르 와트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다.
▲ 6~9일 3박4일 일정으로 캄보디아 문화체험에 나선 결손가정의 청소년들이 앙코르 와트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다.

6일 오전 8시 김해국제공항. 결손가정의 청소년 15명이 천년의 고대 왕국이 살아 숨쉬는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들이 세계적인 문화 유적지인 캄보디아를 찾은 이유는 남달랐다. 부모와 함께 생계를 걱정하고 홀로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미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한국복지재단 대구지부는 대구은행 후원으로 15명의 결손가정 청소년(중·고교생)들에게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2007 비전찾기 해외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천년 전 크메루 왕국 땅을 둘러본 청소년들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너무 감사하다."며 눈물을 지었다. 3박4일 동안 이들 청소년들이 캄보디아에서 만들어 낸 희망찾기 프로그램을 따라가 봤다.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

"1달러, 1달러만 주세요." 톤레 사프(tonle sap) 호수에서 만난 5세짜리 남자 아이는 바나나와 망고 등 열대과일을 하나씩 들고 한국말로 연방 1달러를 외쳐댔다. 앙상한 팔과 다리, 볼록한 배. 영락없이 굶주림에 지친 아이들이었지만 이들은 해맑은 미소를 띠며 호수를 구경하는 문화체험단 학생들을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이곳 아이들 한 끼 식사는 300원. 하지만 이들은 매일 굶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경북도만한 면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톤레 사프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광객들은 생명의 연장선과 맞닿아 있었다. 힌두교를 대표하는 바이온 사원을 찾을 때도 한국인을 향한 구애는 계속됐다. 바이온 사원 입구에 들어갈 때쯤 어디선가 구슬픈 아리랑 연주소리가 들렸다. 지뢰 부상자들이 모여 캄보디아 전통 악기로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3천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는 캄보디아에는 지뢰로 인한 부상자가 유독 많았다. 6·25한국전쟁과 보릿고개를 경험했던 한국인들의 온정에 이들은 음악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전쟁의 상처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캄보디아 아이들. 학생들은 처음 이들의 눈망울을 마주보지 못했다. 단지 학생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캄보디아 아이들을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학생들은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며 세상을 원망했던 시간들을 서서히 되돌아보고 있었다.

◆고난과 슬픔 씻은 앙코르 와트

사원 중 유일하게 해가 지는 서쪽으로 출입문이 나 있어 왕의 무덤으로 불리는 앙코르 와트(산스크리트어로 '수도사원'을 의미)는 우주의 바다를 뜻하는 해자와 히말라야 산맥을 의미하는 주벽으로 둘러싸여 사원의 비범함을 더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사원을 찾은 날은 38℃까지 올라가 앙코르 와트까지 2㎞를 걷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더위에 굴하지 않았다. 천 년 전 늪지의 땅을 돌로 다지고 그 위에 사암을 쌓아 1천200개 사원을 지은 불가사의한 유적에 학생들의 호기심은 더욱 빛났다. 1, 2층의 미물계와 인간계의 부조(浮彫)를 둘러본 후 학생들은 거대한 난간에 부딪쳤다. 3층 천상계로 통하는 계단의 각도가 72도로 깎아지른 절벽을 연상케 한 것. 과거 캄보디아인들은 신을 만날 땐 네 발로 기어올라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손잡이 하나 없는 계단을 기어 올라가는 학생들의 얼굴에선 식은땀이 흘렀지만 낙오자 없이 천상계에 올라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해자와 주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상계 꼭대기에서 학생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겪었던 고난과 슬픔들을 극복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 눈물로 하나된 캄보디아의 마지막 밤

여정이 끝나는 밤, 15명의 학생들은 인솔교사였던 한국복지재단의 정재욱(34) 복지사의 방에 모였다. 어린 나이, 가슴에 생채기 하나씩을 간직하며 살아온 학생들은 캄보디아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씩 토해내기 시작했다. 놀림거리가 될 것이 두려워 그동안 마음속에 굳게 숨겨놓았던 감정들을 꺼내며 앞으로 어떤 미래를 설계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들이 이어졌다. 눈물로 쏟아냈던 학생(이름은 가명)들의 다짐을 소개한다.

▷김지영(16·여)=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저라고 생각했어요. 의사가 돼 돈 많이 벌어 잘 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젠 생각이 달라졌어요. 도덕책에서 봤던 '국경 없는 의사회'. 이젠 책속의 단어가 아닌 제 삶의 미래가 됐습니다. 훗날 이곳을 다시 찾아 꼭 의료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이민희(17·여)=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왜 나만 이렇게 태어났냐며 원망하는 시간들이었지요. 이젠 이런 생각 안 해요. 팔 하나를 잃고서도 해맑게 웃으며 살아가는 꼬맹이의 얼굴이 잊히지 않거든요. 제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들에게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박민수(17)=한때 방황한다고 공부에 소홀했어요.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거든요. 이젠 달라지려고 해요. 공부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거든요. 10년 후엔 돈 많이 벌어 이곳에서 자원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희정(17·여)=악착같이 공부했어요.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저만 생각하고 지냈지요. 스스로 반성 많이 했어요. 해외 여행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이 많은 분들의 도움인데 그걸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젠 봉사하며, 받은 것을 베풀면서 살고 싶어요.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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