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판매 휘발유 가격이 5개월째 상승세를 타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들어 휘발유를 비롯한 자동차 연료비는 7.8%가 인상돼 소비자 물가 상승률 1.9%보다 네 배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가 예전보다 훨씬 우리 생활 가까운 곳으로 다가오고 생계를 위해 자동차를 몰아야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기름값에 대한 민감도 역시 종전보다 더 높아졌다.
기름값이 오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최근의 추세는 정부의 과도한 유류세 유지에 비난의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정유회사들의 가격 담합과 과도한 이윤 추구를 비판해온 것과는 달라졌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기름값 인상·인하에 따른 생활 변화뿐만 아니라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 기름값 인상의 세부적인 요인, 높은 유류세를 유지하는 정부의 의도와 비판 논리의 차이점, 고유가 시대에 필요한 정책 등에 대한 이해도 넓혀야 한다.
◆고유가의 모순-소비자 가격과 세금
우리나라의 기름값이 상승 행진을 계속하는 데는 당연히 원유가의 인상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원재료 값이 오르는데 가공품인 휘발유나 경유의 가격이 오르는 건 누가 봐도 논리적으로 이상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원유값과 다르게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있다.
먼저 정유업계와 관련해서는 도매가와 소비자가의 차이가 항상 여론의 도마에 오른다. 최근 석유협회 발표에 따르면 휘발유 도매가격이 4원 떨어지는 동안 소비자 가격은 오히려 4.75원이 올랐다고 한다. 또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최근 4개월간 16.5% 상승한 데 비해 국내 휘발유의 세전 공장도가격은 32.1%나 폭등했다. 물론 기름값 책정에는 환율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이해할 수 없다.'(신문 사설) 여기다 '원-달러 환율이 초강세면 기름값이 내려야 하는데도 국내 휘발유값은 거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매일신문 사설)하는 것도 문제다.
세계 어느 나라든 기름에 붙는 세금이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세금 비중이 과도한 편이다. 최근 기름값 인상과 관련해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 부분도 바로 세금이다. '기름이 아니라 세금을 넣고 다닌다.'는 말에 누구나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국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휘발유 평균가 ℓ당 1천496.4원을 놓고 볼 때 세전 가격은 616.07원에 불과했다. 여기에 교통세 526원, 주행세 139.39원, 교육세 78.9원, 부가가치세 136.04원 등 배보다 큰 배꼽이 붙는 것이다. 국내 휘발유와 경유의 세금 비중은 각각 60%와 50% 수준이다. '운전 열심히 하면 애국자'라는 소리는 결코 우스개가 아니다.
◆정부 주장과 반박 논리
▷다른 나라보다 세금이 많지 않다?
정부는 우선 세금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세금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높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재정경제부는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7.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에서 프랑스(67.3%), 영국(64.7%), 독일(63.1%)보다 낮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하는 통계는 곧바로 뒤집혀 공격당한다. 일본의 경우 휘발유의 세금 비중이 41%, 호주 38%, 캐나다 31%, 그리고 미국이 14%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정부는 궁색해진다. '비교 대상 국가의 경제수준을 감안할 경우 우리나라의 유류 관련 세금 비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국민총소득(GNI)을 감안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이 100일 때 일본은 31, 호주는 29, 캐나다는 28, 그리고 미국은 17로 산출된다. 또한 GNI를 고려한 휘발유 세금 수준은 우리나라를 100으로 가정할 때 일본은 23, 호주는 19, 캐나다는 15, 그리고 미국은 4에 불과하다.'(신문 칼럼)
▷소비를 억제하고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
유류세 인하 요구에 대해 정부가 내세우는 가장 주요한 논리는 '휘발유 값을 내리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 국제 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박이 없을 리 없다. '그런 논리가 맞으려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우리 기름값이 그동안 소비 증가를 억제하는 데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2000년 이후 5년간 석유소비량은 2.5% 증가한 반면, 세금 총액은 42%나 급증한 통계가 잘 말해주고 있다.'(신문 사설)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에너지 절약의 방법도 세금을 통한 억누르기 방식이 아니라 기술 개발의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유류세를 걷어 갈수록 늘어나는 재정 수요에 대응하는 현실을 살펴 달라는 정부의 설명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거의 모든 국민에게 부담을 가하는 간접세를 유지해 그 불만이 엄청난 판에 거기서 거둔 세금을 복지 정책에 사용한다는 것은 효과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서민 경제를 위해서도 유류세 등 간접세 비중은 낮추고 직접세 비중을 높이는 게 옳다. 날로 늘어나는 복지 재정 등 재정수요가 넘친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유류세 등 소득역진적인 간접세 비중을 높이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혜택을 늘려봐야 정책 충돌만 일어날 뿐 효과는 반감된다.'(매일신문 사설)
▶다른 문제점들
기름값이 문제될 때마다 제기돼 왔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정유사들의 도덕성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국제 유가의 동향이나 국내 시장 경쟁 등과 큰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뛰어난 영업 실적을 거뒀고 임직원의 연봉이나 복지 수준 등이 공개돼 국민의 눈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여론을 어느 정도 의식하는지는 미지수다. '막대한 수익을 풀어 정유사 차원에서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대안을 내려야 한다는 게 현재의 여론이다. 즉 정부가 보장해준 과점체계 내에서 안정적으로 장사를 해온 정유사들이 또다시 소비자들만 고유가의 폐해를 떠안는 모습을 지켜만 봐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신문 기사)
불투명한 가격결정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석유제품 가격 담합을 이유로 정유사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즉각 소비자 가격을 올리는 정유사들이 내릴 때는 쥐꼬리만큼 내리는 것도 언제나 원성을 사고 있다. '정유업체나 주유소에 적정 이윤은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담합 또는 유통 과정의 불투명성에서 빚어지는 과도한 이윤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 적절한 제재가 필요하다.'(신문 사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부분은 세수 확보가 아니라 이 부분이라는 지적도 많다. 기름값 자율화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있는 가격결정 구조와 유통 구조가 투명해질 수 있는 대책을 정부가 나서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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