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규리 作 '뒷모습'

뒷모습

이규리

어떤 스님이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목살 두어 근 사들고

비닐봉지 흔들며 간다

스님의 뒷목이 발그럼하다

바지 바깥으로 생리혈 비친 때처럼

무안한 건 나였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분홍색 몸을 가진 것

어쩌면 우리가 서로 만났을까

속세라는 석쇠 위에서 몇 차례 돌아누울

붉은 살들

누구에겐가

한 끼 허벅진 식사라도 된다면

기름냄새 피울 저 물컹한 부위는

나에게도 있다

뒷모습은 남의 것이라지만

너무 참혹할까 봐 뒤에 두었겠지만

누군가 내 뒷모습 본다면

역시 분홍색으로 읽을 것이다

해답은 뒤에 있다

세상에 뒷모습만큼 정직한 게 어디 있을까. 아무리 속눈썹 붙이고 입술 진하게 그려도 뒷모습만큼은 꾸밀 수가 없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억센 악력으로 악수 건네고 돌아서던 친구, 뒷모습은 얼마나 안쓰럽던가. 여기 또 하나의 서글픈 뒷모습이 있다. 분홍색 몸을 가진 우리의 뒷모습. 몸이 있기에 피해나갈 수 없는 물컹한 욕망. 핏물 내비치는 돼지목살 같은 욕망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욕망이 없다면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하는 게 인간. 욕망이 없다면 삶도 없다. 그러므로 욕망의 뒷모습은 참혹하지 않다. 참혹함이 있다면 있는 뒷모습을 인정치 않으려는 무지. 그 사실을 알기에 수련장 뒤에 붙어 있는 해답처럼 인생의 진실은 뒷모습에 있다고 시인이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시인이여, 우리 동네 뒷골목 간판에 써놓은 뒷고기, 그것도 뒷모습의 한 종류인가요?

장옥관(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