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1일 오전 10시 동산병원 입원실.
유난히 추운 날이다. 아내는 오늘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3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막내 혁이라도 알아보면 좋으련만 아내의 머릿속까지 파고든 암세포는 모정까지 앗아가 버렸다. 며칠째 아내는 아이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격렬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아내는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엄마 품이 그리운지 혁이는 잠든 엄마라도 보고 싶어 매번 입원실을 맴돈다. 아내가 깨어나길 기다리다 지친 혁이가 옆에서 새근거리며 자고 있다. 혁이의 자는 모습이 사랑스럽다며 유난히 많은 사진을 찍었던 아내의 기억 속에 혁이가 남아있어야 할 텐데···.
아내 곁에서 글을 적는 시간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인기척이라도 있으면 간병이라도 할 수 있지만 아내가 날 찾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두렵다. 아내 없는 삶이 그려지지 않는다. 숨막힐 것 같은 이 적막함이 아내의 웃음소리로 변하길 오늘도 조용히 기도해 본다.
"여보, 힘내요. 당신 일어나면 일기 보여주려고 벌써 두 권이나 썼어요. 당신 잠든 사이 아이들 이야기가 궁금할 것 같아서요. 그러니 제발 일어나 줘요. 애들이 당신을 찾아. 여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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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위암이었습니다. 소화가 되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우리 형편에 병원은 사치였죠. 각자 결혼 생활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던 우리 부부에겐 아이들은 삶의 전부였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학원비를 벌어야 한다며 악착같이 식당일을 나갔지요. 아픈 것을 잊을 정도였어요. 저 역시 택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행복했지요. 마흔이 넘어 만난 인연에 감사했습니다. 아내를 닮은 아이들 역시 착하고 건실하게 커갔지요. 혁이(10)는 매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요. 연일 집안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 평생 아들 둘을 낳고 사랑하는 아내와 사는 축복이 찾아오리라 예상 못했지요.
하나 행복은 참으로 짧더군요. 아내는 위암 판정을 받고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버렸지요. 아내의 병 간호를 하면서 저 역시 지병이던 고관절 골절이 악화됐습니다. 아내를 차디찬 땅 속에 묻은 날, 앉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는 통증이 찾아오더군요. 오히려 통증이 고마웠지요.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을 잊게 만들어줬으니까요. 그 후 일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방세는 날로 늘어갔고 아이들 끼니조차 제때 챙겨줄 수 없게 돼 버렸지요. 짧았던 행복만큼이나 고통도 한 순간 찾아오더군요. 곤충박사가 되겠다는 첫째 훈이(14)와 의사를 꿈꾸는 혁이를 잘 키워내야 할 텐데 아이들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면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해집니다.
12일 오후 대구 서구 비산동의 윤경수(55) 씨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그는 허리와 다리 통증 때문에 인터뷰 내내 무릎을 꿇은 채 자세를 바꾸지 못했다. 지팡이가 없으면 일어설 수도 앉을 수도 없는 그는 수술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밀린 방세가 200만 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아내 병원비도 아직 정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아내의 빈자리를 홀로 지키며 생을 이어가는 그의 삶이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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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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