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해발 8,000m 이상 山地(산지)는 '죽음 지대(death zone)'라 불린다. 산소가 적어 치명적인데다 기온까지 -30℃ 이하여서 제 몸 하나 챙기기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1년 전엔 그곳 해발 8,400m 지점에 쓰러져 있던 한 산악인을 여러 등산팀의 4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 발생했다. 9년 전엔 당시 마흔 살이던 한 미국 여성이 또 그렇게 쓰러져갔다. 세르파 없이 무산소 등정했다가 동반했던 남편을 먼저 잃은 그녀는 지나가던 산악인을 발견하고 "나를 두고 가지 말라" 애원했으나 허사였다.
이런 비정함이 쉽게 연상시키는 장면은 아무래도 야생 다큐이다. 어떤 한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초원의 암사자들이 야생 소떼에 달려들어 무리를 흩트러뜨렸다. 하지만 고립된 한 마리의 표적이 위험해졌을 즈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흩어지기 바쁘던 소떼가 되돌아와 사자들을 내쫓은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자 소떼는 결국 구출을 포기한 채 떠나기 시작했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일 뿐, 그 너머는 자연의 영역이라 말하는 듯했다. 드디어 포식자들이 달려들어 희생물을 뜯기 시작했다. 그때쯤 사자들 사이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당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소의 발길질에 치명상을 입었던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무리를 떠나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서는 함께 하되 죽음은 각자의 몫이라는 뜻 같았다.
모두가 야생에서나 일어나고 극한상황에서나 용인되는 일들이다. 비록 그런 게 자연의 본원적 섭리라 하더라도 문명세계는 그것과 다르길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달엔 초모랑마를 향해 전 세계가 손뼉칠 일이 하나 생겼다. 네팔 정부 탐사대의 한 여성 대원이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일이 또 발생했으나 한 미국 산악인이 나서서 구출한 것이다. 그 미국인은 해발 8,300m의 위험 지점인데도 자신의 산소통을 내 주고 썰매를 만들어 무려 12시간에 걸쳐 환자를 태워 내려왔다고 했다. 9년 전 미국 여성 산악인이 혼자 숨을 거두도록 버려 두고 왔던 영국 산악인도 "이제 시신이라도 거둬야겠다"며 지난달 다시 초모랑마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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