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말

원로시인 우보(牛步) 선생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분을 두고 '말수가 적어서 편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말은 해야 그 값이 있고 빛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 필요하지도 않는 말을 해서 말한 이나 듣는 이 모두가 이로울 게 없는 말들도 부지기수다.

푸른 숲속을/ 사람들이 걸어갑니다/ 사람들 사이로/ 나무들도 걸어갑니다/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고,/ 사람들은 땅을 향해/ 헤매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말이 없고/ 사람들은 늘 소란을 피웁니다/ 사람과 나무와의 거리는/ 지척인데/ 그 평화는 서로 아득하고/ 그 생각의 거리도/ 더욱 멀기만 합니다.

'나무들은 말이 없고 사람들은 늘 소란'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우보 선생의 시 '숲속 산책'은 불필요한 인간의 실언과 허언을 질타하고 있는 듯싶다. 우보 선생은 평소에 말수가 거의 없는 시인으로 더 잘 알려지고 있다.

그 이유로는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다변보다는 침묵'이라는 본인의 지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선생의 사금파리 같은 말, 즉 우선 듣기에는 무안하나 교훈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가끔 있다. 그만큼 꼭 해야 할 말과 안 해서 더 좋을 말을 가릴 줄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지혜로운 일이다.

편리한 생활만을 쫓는 도회의 수직공간보다 불편은 하지만 땅에 씨앗을 뿌리고 거두며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은 아직도 신선한 생명감과 진실과 믿음이 묻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규보의 '동문선'에는 '말이란 먼저 거슬리고 뒤에 순한 것이 있고, 밖으로는 가깝고 안으로는 먼' 그런 말도 있다고 했다. 말은 일정한 그릇의 모양과 용도처럼 제각기 고정된 표현의 한계와 전달기능을 갖고 있다. 물론 뉘앙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말은 태어날 때 표현과 기능의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기능과 의미 자체까지 변용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말을 두고 한 말들이 분분하다. 법구경은 '말의 악행을 버리고 말의 선행을 거두라'고 권고하고 있다.

혹여 후딱 지나와버린 오늘 하루도 내가 너무 쉽게 낳아버린 말 때문에 누구의 가슴이라도 아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정객(政客)들의 '밖으로 가깝고 안으로는 먼 말'을 매일 접하고 살아야하는 일 또한 내 일 못잖게 걱정되기도 하는 요즈음이다.

김정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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