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세계 중생이 겪게 될 갖가지 현실적인 고통을 치유해주는 관음성지여서 그럴까? 2년 2개월여 전인 2005년 4월 6일, 산불이 덮쳐 화난을 당했던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동토를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여리지만 강하게 검게 불탄 흔적들을 씻어내며, 치유의 관음성지로 거듭나며 희망을 틔워내고 있다. 송강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노래했던 낙산사 노송은 '오봉산 낙산사'라고 쓰인 일주문을 들어서는 산사 초입에 조금 남았을 뿐, 대부분 타버렸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을 모셨기에 주 법당이 대웅전이 아니라 원통보전인 낙산사의 동종은 시뻘건 불에 녹으면서 다 기화되어버려 솥뚜껑만한 잔해만 남기고 사라졌고, 울창한 천년 솔숲과 원통보전도 깡그리 잿더미가 되었다. 일주문을 지나 성(聖)과 속(俗)을 가르며 극락정토로 이끄는 홍예문에서 법당으로 이어지던 추억의 오솔길은 길벗이던 노송들을 잃어버린 채, 황량하게 남아있다. 향기롭던 솔내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6월의 태양을 가려줄 그늘 하나 찾기 어렵다. 둥치가 짤려나간 채, 시꺼먼 그루터기만 남은 소나무들이 여기가 그 유명한 낙산사 오솔길이었음을 보여주는데, 아직도 탄내가 나는 듯하다. 그만큼 화난(火難)이 심했던 거다. 맹렬한 기세로 산사를 집어삼키던 화마를 눈앞에 보는 듯하여 몸서리를 치는데, 어디선가 한줄기 청풍이 불어와 마음을 식혀준다.
◈국내 4대 관음기도 도량인 홍련암
원통보전과 동종, 수천 그루 노송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낙산사는 지난 2년간 쉼없이 복원불사에 매진하였던 모양이다. 찾아오는 이들이 허허롭지 않도록, 많은 불사를 해두었다. 힘든 일을 겪으면 의외로 팍팍해지기 마련인데, 만나는 사람마다 의외로 따뜻하고 여유가 있었다. 입장료도 없앴고, 맨 먼저 해우소와 공양간을 마련하여 누구에게나 무료로 국수 공양을 제공한다. 관음기도를 드리러오는 불자에게는 절 초입에 있는 낙산 유스호스텔을 인수하여 그곳에 잠자리를 마련해준다. 오는 20일에도 108사찰순례단으로 유명한 서울 대전사의 1천700명 신도가 낙산사를 찾는다. 용하게 산불을 피해간 낙산사 홍련암은 사바세계의 고통을 씻어주는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이다. 남해 보리암, 강화도 보문사, 여수 향일암과 더불어 인간의 고뇌를 덜어주고, 자비의 손을 내밀어 평온으로 인도하는 낙산사는 이 절이 지닌 치유의 명성만큼이나 세상 어려움에 쉬 절망하지 않았다. 마치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면, 용기백배하여 승리의 깃발을 올리는 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아니 더 물러설 곳이 없어서라기보다, 인력으로 피하기 어려운 큰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니 관세음보살께 맡기고, 한번 해보자는 발심이 성과를 보이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을 끝낸 원통보전터는 고증에 따라 32평 크기로 다시 지어졌다. 대들보를 얹고, 골기와까지 앉힌 원통보전은 전국 신도들을 모시고 오는 11월 16일이면 1차 복원식을 갖는다.
◈일곱 복비 내려줄 정토로 들어서는 홍예문
강원도 양양 낙산사를 찾은 것은 지난 11일이었다. 경부고속국도 북대구IC에서 금호JC로 가서 중앙고속국도를 타고 원주로 향해 달리다가 만종IC에서 내려 영동고속국도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종점인 강릉JC까지 가서 다시 동해고속국도로 갈아타고 역시 종착지인 현남까지 375km를 달렸다. 시내를 빠져나가고, 낙산해수욕장에 인접해 있는 낙산사까지 왕복 800km, 오가는데만 꼬박 8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그 길이 지겹지 않았다.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쓴 '기우정'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홍련암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공사 중이라 길이 막혀서 일주문 쪽으로 들어가니 비교적 화마를 덜 입었는지, 일주문쪽 낙락장송들은 무사하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일주문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무지개처럼 둥그스럼하게 아름다운 홍예문(虹霓門)이 나온다. 쌍무지개를 뜻하는 낙산사 홍예문은 성(聖)과 속(俗)에 걸쳐 있다. 얼마나 화마가 거칠었으면, 홍예문과 석축까지 다 타버렸던 모양이다. 금방 복원되었는지, 아직도 주변에는 석재들이 널려 있는 홍예문은 정토의 땅에 들어서는 모든 이에게 무지갯빛 일곱 가지 천상 복비(福雨)를 골고루 뿌려주듯이 그렇게 아름답게 복원되었다. 하늘과 땅에 걸쳐 있는 무지개처럼 속세와 청정도량에 걸쳐진 홍예문을 넘어서면, 탐진치 삼독에 젖은 미혹한 마음들을 깔끔하게 씻어내고 부와 자비, 사랑, 건강과 환희, 법과 지혜 등에 이르는 일곱 가지 복된 비를 흠뻑 맞을 것 같다.
◈ 화마에서 홍련암은 용케 피해
2005년 4월 6일, 양양 산불로 초토화되었던 낙산사 경내는 여기저기서 복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숯검댕이 숲과 탄내 나던 경내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참회의 장탄식과 불사원력의 기도가 결집되어, 예전의 모습을 하나 둘 되찾고 있다. 우리 소나무로 장애인까지 쓰기에 편리하도록 지은 해우소 2채도 아름답게 지어졌고, 의상기념관도 들어섰다. 홍련암 입구에 새로 지어진 요사채 연화당은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채 고운 단청까지 마쳤고, 산불피해를 본 데다 폭풍 피해까지 겹친 홍련암 부근의 무너진 축대는 보수 중이다. 천일 24시간 관음기도가 올려지고 있는 홍련암 가는 길에는 해당화를 심는 조경작업이 한창이다. 동해안을 바라보는 거대한 돌 관음상인 해수관음전 법당, 요사채 등 불사도 시작되었다. 낙산사는 모든 관음상이 다 모셔져 있다. 원통보전의 관음상은 건칠이고, 홍련암 관음상은 철불이며, 보타전 관음상들은 목불이며, 해수관음상은 석불이다. 원통보전 건칠 관세음보살이 꽤 큰데도 화마를 피해 살아남은 것은 종이와 삼베로 만들고 옻칠을 하여서 가벼운 건칠관음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양양 산불 소식을 듣고 급히 절로 돌아온 낙산사 정념 주지스님은 1차 화재가 끝나고 모두들 손을 놓고 안심하고 있을 때, 양양 시내를 다 돌아다니며 55대의 소화기를 구해두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원통보전 관세음보살은 안아서 더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그래서 원통보전의 관음상은 화마를 피했고, 지금 임시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다. 오는 11월 16일 원통보전 제자리에 봉안될 예정이다. 보타전에는 각종 관음상으로 가득 찬 불전이다. 보타전에는 칠관음, 32응신, 천수천안, 1천500관세음보살 등이 모셔져 있고, 낙산사 복원과정에서 나온 공중사리탑 부처님 진신사리가 전시되어 있다.
◈공중에서 사리가 떨어지다
어인 조화일까? 산불로 큰 피해를 본 낙산사는 잿더미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품에 안는 경이로운 일도 있었다. 산불이 난 지 꼭 1년여 만인 지난 2006년 4월 28일 오전 9시 30분, 낙산사 측은 화마를 입은 낡고 오래된 사리탑을 보수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이 사리탑은 울창한 노송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기울어져 있어서 사리장엄 도굴배들이 손을 댄 것으로 부도쯤으로 여겨져 눈길을 끌지 못했었다. 그런데 산불이 덮치면서 주변 소나무들이 타버리자 사리탑이 훤히 드러나게 되었다. 낙산사 측은 이 부도의 보존처리도 할 겸해서 옥개석을 해체하던 중 사리탑 공중에서 사리장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노란색 비단보자기에 원형 청동합이 있고, 청동합 안에 4겹의 비단으로 싼 은제합이 모셔져 있고, 그 은제합 안에 다시 2겹의 푸르고 누런 길상문과 만(卍)자 등 여러 가지 무늬로 장식한 원형 금제합이 안치되어 있었다. 금제합 안에는 색동 비단으로 싼 자줏빛 유리사리호를 받들었고, 그 안에는 불사리 1과를 흰색 명주솜 보료 위에 봉안하였다. 현재 낙산사 보타전에서 친견할 수 있는 낙산사 부처님 진신사리는 0.8cm ×0.6cm 크기의 대형으로 유백색 서광이 비치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문화재계에서는 낙산사 진신사리가 신라 때부터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련암 해수관음공중사리비와 일치
이 낙산사 진신사리를 모신 청동합에는 강희 31년(1692년, 숙종 18년)이라는 연대가 붉은 글씨로 쓰여져 있었는데, 이는 홍련암 가까이에 서 있던 오래된 석비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어 신이롭다. 홍련암 부근에 있는 '해수관음 공중사리비명'이라는 석비(石碑)에는 숙종 9년(1683년) 철불인 홍련암 관음불의 개금불사를 할 때 서기가 가득 차오르더니 부처님 복장이 아닌 닫집 부근 공중에서 영롱한 구슬이 떨어졌는데, 광채가 영롱했다고 한다. 절에서는 사리비를 모시고, 사리탑을 세우며 공중사리탑이라고 명명하였다고 적혀있다. 의상대와 망망대해를 굽어보는 대지에 세워진 사리탑은 기울어져 있어서 일찍이 도난당했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번에 진신사리가 발굴된 것이다. 낙산사 법인 총무국장 스님은 "현재는 보타전에서 친견법회를 열고 있는데, 복원불사가 끝나면 여법하게 다시 봉안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광복 후 직접 사리를 친견 봉안하였던 일은 1959년 팔공산 송림사 5층 석탑의 사리장엄, 1966년 황룡사 9층 목탑의 사리장엄과 불국사 석굴암의 사리장엄, 1970년 월정사 8각 9층 석탑, 1971년 무량사 5층 석탑, 1977년 도리사 세존사리탑의 사리장엄을 들 수 있다. 화마로 인한 낙산사의 소실, 그 소실이 불러온 부처님 진신사리. 낙산사 공양간 앞 나무에 걸려있는 '길에서 길을 묻다'는 글귀가 화두처럼 와닿는다.
글·최미화기자 magohalmi@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