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수용의 현장리포트] 주식시장의 대박과 쪽박

대구 중구에 있는 한 증권사 사무실을 찾았다. 주식 때문에 온통 난리라고 하지만 객장은 비교적 한산한 편. 인터넷을 통한 주식거래가 활발해지고, 비밀스레 움직이는 '큰 손'들은 객장을 찾지 않기 때문에 예전처럼 떠들썩한 모습은 보기 어렵다.

객장 정면에 놓인 거대한 전광판은 수시로 깜빡거리고, 소파 깊숙이 몸을 누인 고객들은 탄성과 탄식을 쏟아낸다. 이날 오른 종목 수가 내린 종목보다 3배 이상 많았지만 말 그대로 '재수 없이' 내린 종목에 투자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오름세가 더뎌서 애를 태우는 사람도 있다.

객장에는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거래가 멈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이 끝나는 오후 3시까지는 피를 말리는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런 와중에 객장 한 켠 칸막이가 있는 테이블 주위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할머니 투자자들이 눈에 띄었다. 보리밥에 풋고추, 된장, 김치가 전부인 소박한 식사. 객장에서 만나 친구처럼 지낸다는 할머니들의 연령층은 60대 후반에서 70대 후반 사이.

"돈도 못 벌었는데 밥을 어떻게 사먹어요? 대충 이렇게 떼우는 거지." 주식 투자 2, 3년차 초보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대화 중에 20년 전 주식시장 얘기가 간간히 흘러나왔다. 요즘 활황세여서 즐겁지 않느냐는 물음에 한 할머니는 "그간 까먹은 돈이 얼만데, 이 정도로는 턱도 없지."라며 응수했다.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1인당 수억 원씩을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주식시장은 올 연말이면 지수가 2천 포인트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등 호황 국면이지만 도대체 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없다. 증권사 한 브로커를 통해 지금 대구에 살고 있는 대박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박난 사람들

화공약품 도매상을 하고 있는 50대 A씨. 지난 1997년 외환위기가 몰아쳤을 때 A씨는 3억 원 정도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 전에도 1, 2억 원씩 투자하면서 주식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경험했던 그는 외환위기가 닥치자 '위기가 바로 기회'라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단다. 주류회사, 철강회사 주식을 사서 대박을 터뜨렸다. 모증권사 주식을 160원일 때 사서 1만 2천 원에 되판 적도 있단다. 자기 판단도 주요하게 작용하지만 철저하게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믿는 편. 현재 A씨가 보유한 주가 총액은 300억 원에 육박한다. 10년 사이 100배의 부를 일궈낸 셈이다.

올해 35세인 전직 증권회사 직원 출신 B씨. 자기 돈 2천만 원과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 1억 원을 합친 돈으로 모 통신사 주식을 사들였다. 1억 2천만 원 어치를 사들인 이 주식은 이후 거의 매일 상한가를 쳤다. 매일 15%씩 복리 이자가 붙은 셈. 이렇게 만든 돈 10억 원을 다른 기술종목에 투자해서 역시 대박을 터뜨렸다. 투자 전문가 수준인 B씨는 선물(先物)에도 손을 댔다. 현재 B씨의 재산은 100억~200억 원으로 불어났다. B씨는 별다른 직업도 없이 자기 자산을 운용하는 전문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약국 경영자의 부인인 C씨도 대박 투자자다. 약국 관련 업무에 능숙하다보니 제약회사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실적이나 재무기반도 좋은데 시세가 낮은 모 제약회사 주식을 자기 돈 5억 원을 투자해 샀다. 5억 원어치 주식을 담보로 3억 5천만 원을 대출받아 다시 주식을 샀다. 주식액의 70%까지 담보 대출이 가능하다. C씨는 다시 3억 5천만 원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식을 샀다. 이렇게 사들인 주식은 10억 원 어치를 훨씬 넘는다. 매입 당시 이 제약회사의 주가는 400~700원 선. 현재 이 회사 주가는 6천 원을 웃돈다. C씨는 시세 차익만 수십억 원을 거둬들였다. 담보 대출 이자 7%는 속된 말로 '껌값'인 셈이다.

10억 원 이상 시세차익을 본 '큰 손' 투자자들이 대구에도 적잖다고 증권사 관계자는 말했다. 상당수는 재산이 수십억 원에 이른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가치투자'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시장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한다. 주타깃 종목을 서너 개 정해 집중 공략한다. 위험을 막기 위해 포트폴리오, 즉 분산투자도 있지만 지나치면 수익률이 떨어져 꺼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당일 주요 고객들의 투자내역 실적을 보여주었다. 투자금액은 5억~10억 원 정도이며 올 들어 투자수익이 2억~3억 원에 이르렀다.

◆쪽박찬 사람들

'대박'이 있다면 '쪽박'도 있게 마련. 특히 대구 사람들은 기질상 대박을 터뜨리기 힘들다고 투자 상담사들은 입을 모은다. 흔히 말하는 '올 오어 나씽'(all or nothing) 때문. 증권가 속어로 '몰빵'이라고 부른다. 될 성 부른 종목에 '묻지마'식 투자를 한다는 것. 여유자금이 아니다보니 겁이 많다. 조금만 내리면 팔아버리고, 조금만 올라도 조정국면에 접어들까봐 팔아버린다. 한 직원은 남편 몰래 5천만 원을 가져온 한 부인 이야기를 꺼냈다. "겁이 많다면서 주가도 싸고 안정적이면서 수익률 좋은 종목에 투자해 달라더군요. 말은 못했지만 그런 종목을 알면 제가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지 이러고 있겠습니까?"

주식은 아무도 모른다. 몇 해 전 주가연계증권(ELS)가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당시 우량주로 꼽혔던 일부 종목 투자자들은 말 그대로 쪽박을 찰 수 밖에 없는 신세다. 1억 원을 투자한 사람이 1천만 원도 못건져가는 상황이 벌어진 것. 증권사에 고객 민원이 쏟아지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ELS이고, 그게 주식이니까.

아울러 증권 전문가들도 올해 1/4분기 전망을 헛짚었다. 대부분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코스피(KOSPI) 지수는 1천700선을 돌파해 연말까지 2천선 돌파를 내다보고 있다. 1/4분기 조정국면을 예상했던 애널리스트들은 고객들에게 팔 것을 권유했고, 상당수는 그렇게 했다. 작년부터 꾸준한 오름세로 1천 400원까지 올라서 팔았는데 현재 2천 800원까지 2배나 오른 종목도 있다. 증권가에 이런 말이 있다.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참는다." 불황 속에 모든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속은 쓰리지만 어쩔 수 없이 참는다. 하지만 다들 대박을 터뜨려 웃음짓는데 혼자 손해를 보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다는 뜻.

10년 넘게 주식을 했다는 한 투자자는 객장에서 만난 기자에게 투자 비결을 귀띔했다. "오를 주식을 사면 돈을 벌고, 내릴 주식을 사면 돈을 잃어. 그렇다면 오를 주식인지 내릴 주식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건 아무도 몰라. 전광판은 알지도 모르지."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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