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어게인 2002?

연말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국회 주변이 소란하다. 권력이 그렇게도 좋은지 말싸움을 넘어 마치 死生決斷(사생결단)하는 듯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나라가 온통 물어뜯기 소용돌이 속에 빠졌다.

노 대통령은 15일자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대선 전략(?)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열린우리당 선대본부장이라고 쏘아붙일 만하다.

노 대통령의 주요 발언을 종합분석하면 이렇다.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선택한 후보를 지원한다. 열린우리당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전 총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가동됐다는 소문이 정가에 무성하다.

노 대통령은 대통합에 회의적이다. 대신 후보단일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견해다. 후보단일화는 열린우리당 후보와 통합신당에서 선출할 후보와 단일화다.

노 대통령은 단일화된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바로 남북정상회담이다. 미국과 중국 정상과 함께 만나는 것도 가능한 그림이다. 정상회담 시기는 10, 11월쯤으로 점쳐진다. 방코델타아시아 북한 계좌 문제가 해결된 데다 2·13 합의가 이행되면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가 두 달이든 석 달이든 회담을 추진할 것이다.

범여권에는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노 대통령 이외에 또 다른 선대본부장이 있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최근 들어 동교동 그의 집은 문턱이 닳을 지경이다.

호남의 영원한 보스인 김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과 다소 방향은 다르나 같은 결론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이 정권 잡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 어떻게 하든 범여권에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정권을 창출한 민주당을 중심으로 범여권 대선 후보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연말로 가면 양당대결 구도가 될 것이란 말도 두 차례나 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나돈다.

정가의 이러한 관측이 옳다면 10월쯤부터 후보단일화 논의가 무성해지고 여론조사 등으로 이해찬, 손학규 씨 가운데 1명이 한나라당 후보와 대결하는 국면이 된다.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합해도 한나라당 후보에 못 미치지만 후보단일화 효과로 한나라당 후보를 일거에 앞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2002년이 그랬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4년 10개월간 여론 지지도 1위를 달렸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을 합해도 이 후보에 뒤졌다. 그러나 대선을 2개월여 남겨두고 단일화에 성공한 뒤 노 후보가 이 후보 지지율을 앞질렀고 결국 대통령이 됐다. 단일화 이벤트로 흥행에 성공한 셈이다.

지금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어게인 2002'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이해찬, 손학규 후보 등이 '어게인 2002'를 갈망하고,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보이는 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

대선 관전자에게는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통합신당의 후보가 누가 되느냐와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느냐와 ▷단일화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느냐 여부가 3대 관심거리다.

따져보면 2, 3위를 합해도 1위 지지율에 못 미쳤는데 단일화 뒤 일거에 1위를 앞지른 것을 좋게 보면 우리 국민이 역동적인 증거이고, 나쁘게 보면 이벤트에 국민이 속은 셈이 된다.

지금 범여권에서는 2002년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 국민은 또다시 '이벤트 마법'에 빠져들까? 만약 필자에게 점을 치라면 '아니다.' 쪽이다. 우리 국민은 역동적이어서 같은 마법은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전·현직 대통령까지 나서 이벤트를 벌이느라 국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현실에 넌더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서지 않아도 될 전직 대통령은 침묵하고 국정을 마무리해야 할 현직 대통령은 이벤트나 게임을 즐길 생각은 말고 조용히 일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란 생각이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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