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대에 황촉 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 버선이여.'
(조지훈의 '승무')
그녀의 춤은 정말이지 그랬다. 단아하고 깨끗했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소복처럼 하얀 한복 치마저고리를 갖춰 입은 그녀의 춤을 보기 위해 '불로고분군'을 찾아갔다.
수백 기의 삼국시대 고분들 사이에서 그녀는 살풀이춤을 췄다. 춤사위에 따라 하얀 수건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혹은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겨졌다. 움직임이 없는 듯하다가 손동작 하나로 미세한 바람이 일었다. 맺고 끊음이 분명했다. '정중동'의 춤이다. 결국 마음이 바빠지고 사뿐거리던 버선발이 바빠지면 춤사위도 빨라진다. 고깔을 쓰고 추는 '승무'와는 달랐다.
지난 5월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37회 동아무용콩쿠르' 한국무용 전통부문에서 대구 출신의 서상희(31) 씨와 주연희(37) 씨 등 2명이 각각 살풀이춤으로 금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전통무용 분야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전국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대구지역 전통무용계로서는 낭보였다. 동아무용콩쿠르는 무용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살풀이춤을 췄다.
살풀이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이매방류와 한영숙류라는 두 유파가 양분하고 있는 것을 보듯, 지금껏 서울·경기권과 호남권의 독무대였다. 대구에는 지방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권명화(76) 씨가 있지만 전국적인 지명도는 떨어진다.
몇 년 사이에 대구에서는 전통무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고교생에서부터 전통무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전통무용을 가르치는 학원과 문화센터도 많아졌다. 대구시립국악단과 경북도립국악단, 구미시립무용단 등이 생기면서 저변확대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서상희 씨는 현재 구미무용단에 소속돼 있다.
계명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서 씨는 몇 차례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한 적은 있지만 1등인 금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생 춤을 추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죠." 어떻게 해서 우리 전통춤을 추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춤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중학교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으니 이제 17년이나 되었네요."
서른을 갓 넘었지만 춤은 그녀의 인생이다. "그냥 어릴 때는 춤을 추는 게 좋았어요. 커서 뭘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대회에는 한영숙류 살풀이춤으로 도전했지만 다른 대회에는 다른 춤으로 나갈 생각이다. 전통무용은 유파만 다른 게 아니라 춤사위도 조금씩 차이가 나고 '복식'(한복)도 조금씩 다르다. 이를 테면 옷고름이 다르거나 그런 식이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한마디로 '황진이춤'이라고 할 수 있고 한영숙류 살풀이춤은 '신사임당춤'이죠." 부연해서 설명한다. 살풀이춤의 기본인 정중동의 춤사위는 같지만 이매방류는 기교가 있는 춤이라 손과 발의 움직임이 현란하고 한영숙류는 단아하고 깨끗한 춤사위가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전라도 지방에서 전승된 춤이고 한영숙류는 서울지방에서 전승돼왔다.
살풀이춤은 대표적인 한국전통무용의 하나다. 한민족의 '한'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춤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살풀이춤은 "슬픔의 춤이 아니라 슬픔을 바탕으로 하되 머무름없이 그 비탈을 넘어서 정과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 본능의 이중구조적인 심성을 표현한 춤"이라고 한다. 살풀이춤이 정·중·동의 요소가 강하게 나타는 것은 3박, 4박으로 12/8이라는 규칙적인 리듬을 갖고 있는 살풀이 가락 때문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전통무용 어떤게 있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무용은 탈춤을 제외하고는 '살풀이춤'과 '태평무', '승무'라고 할 수 있다.
▶살풀이춤의 유래는 조선조 중엽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가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 광대예술이 발전함에 따라 창작된 것이다. 살풀이춤의 핵심적인 형식은 손에 수건을 들고 남도무악인 '살풀이'에 맞추어 추는 것인데, 이때 수건을 들고 추는 것은 춤을 만들어 낸 창우(소광대)들이 판소리를 할 때 땀을 닦거나 멋(발림)으로 사용한 데서 온 것이거나 아니면 춤꾼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살풀이춤은 사랑방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예술적으로 보여 주는 공연예술로 발전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소복을 입고 정적인 춤을 춰서 한민족의 정서를 표현한 '한(恨)의 춤'으로 불리기도 한다.
▶태평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흔히들 왕비가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해 췄다며 궁중무의 하나라는 설과 무당이 추던 기복춤이라는 설이 있다. 태평무는 그 내용이 왕과 왕비가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에서 춤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태평무 역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살풀이와 승무를 배우고 난 뒤에 출 수 있을 정도로 동작이 현란하고 발구르는 동작이 복잡하다.
▶승무는 흔히 스님들이 절에서 추는 춤이라고 생각하지만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이 아니라 민간에서 흰 장삼을 입고, 흰 한삼을 끼고, 붉은 띠 모양의 가사를 매고, 흰 고깔을 쓰고 추는 춤을 가리킨다. 불교의식에서 승려들이 추는 법고춤과 바라춤, 나비춤 등은 승무라고 하지 않는다.
승무는 남도민속무가 갖고 있는 달래고 어르고 맺고 푸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한삼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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