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아버지는 모기장 안, 나머지는 모기와의 전쟁

나의 어린 시절, 한여름밤의 모기장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날이 어수룩해지면 모깃불을 피워 모기에 대한 1차 저지선을 형성한다. 마당에 멍석 깔고 앉아 시원하게 국수 한 그릇 말아먹을 때까지는 모깃불로 버터야 했다. 하지만 모깃불의 매캐한 연기로 숨쉬기조차도 힘든 지경이라 국수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더운 여름밤, 좁은 방에 많은 식구들이 모기장에서 잠들 수 없기에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각자의 방식대로 알아서 시간을 보낸다. 이때도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는 바로 모기장에 입성, 낮시간처럼 밤에도 여전히 품위를 지킬 수 있다.

남편 수발과 잔소리가 싫은 어머니들은 이동용 모기장(?)을 휴대하고 대로변에 속속 모인다. 마대자루를 하나씩 갖고 나와 그 안에 들어가 얼굴만 내놓고 서로 마주보며 앉은 어머니들은 한낮의 고단함을 잊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이 모기와 더위를 쫓아주는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고 위험한 순간이었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밤 더위와 모기를 피해 강에서 멱을 감았고 출출해지면 인근 과수원에서 서리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모기장은 또 예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평소 아버지가 차지하던 모기장은 제사 때가 되면 조상님들을 모셨다. 지금처럼 방충망이 없던 시절, 모기와 날파리로부터 제사음식을 지키기 위해 모기장 안에 제수를 모셨고 제주 역시 품위를 지키기 위해 모기장 안에서 제사를 모셨다. 그때 아랫것(^^)들은 마당에서 수많은 모기들과 육탄 방어전을 벌였고 간간이 모기를 잡기 위해 손바닥을 내리칠라치면 "찰싹"거리는 소리도 죽이려고 애섰다. 그때 모기장 안에서 아버지가 "어허 누가 방정맞게스리…."라고 꾸짖으시면 아랫것들은 모기를 쫓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헌혈을 해야만 했다.

내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모기장 안의 세상과 가장의 권위는 나의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사라졌고 지금은 어린 손자가 모기에 물릴까 저어하는 할아버지와 여전히 극성스런 모기만 남은 듯하다.

이재호(영천시 청통면 개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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