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가 된 역사-독일사로 읽는 역사전쟁/ 에드가 볼프룸 지음/ 이병련·김승렬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등 동북공정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동북아시아의 한·중·일 3국은 바야흐로 '역사전쟁'에 돌입했다. 국내적으로도 YS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은 '역사내전'이라고 할 만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에게 '독재자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역사란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인가, 아니면 현실을 정당화하는 무기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역사를 현실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과거의 진실을 파악하는 학문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의 힘'으로 현재의 지배관계를 정당화하려는 세력에게 역사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기능한다.
이 책은 '역사정책'이라는 개념으로 독일의 근·현대사를 분석해 당대의 정치세력이 대중 선동에 역사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그려낸 역사서다. 역사정책은 일반적으로 역사를 다루는 정부 정책을 뜻하지만, 이 책에서는 역사에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실천 행위'를 포괄한다. 여기에는 대중의 역사의식이나 기념일, 기념비, 매스미디어, 역사교육, 학계의 논쟁 등 사회 영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방식의 역사 관련 행위 모두가 포함된다.
저자는 불과 한 세기 동안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 독재, 두 차례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분단과 통일 등을 겪은 독일 역사를 '역사정책사'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당대의 정치세력이 현재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과거의 힘'을 동원했을 뿐 아니라 의심할 여지없는 정론의 역사가 실제는 필요에 따라 조작·생산돼 왔음을 폭로하고 있다. 또 '민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다양한 권력 의지와 이해관계의 엇갈림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드러냄으로써, 각각의 정치세력이 역사를 대중 선동을 위한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활용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독일의 역사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두 나라는 세계적 체제 대결로 인해 수십 년간의 민족분단 경험과 역사 해석을 둘러싼 대중적 투쟁이라는 경험을 공유한 만큼 구조적 공통점 또한 적지 않다. 따라서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역사정책의 정치적 무기화는 독일과 유럽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과 동아시아의 관계에서도, 한국 내 정치투쟁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역사학이 가진 이면의 위험성에 대한 재인식이야말로 국가 간의 역사전쟁과 자국 내의 역사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 더욱 요구되는 부분일 것이다. '무기가 된 역사'는 오늘날 분단국가 한국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과 정치적,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84쪽, 1만 3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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