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니 조선이 보이더이다.'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된 민영환이 204일간 11개국을 거치는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조국을 걱정하며 쓴 기행문 '해천추범'(海天秋帆)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훌쩍 지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정부나 기관단체의 구호에서부터 개인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세계화의 흐름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세계시민 육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학교교육도 세계화의 흐름에서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의 실태를 다룬 '지구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라는 저서에서 세계화의 흐름을 '수십억 인구와 기업들이 지리적 위치나 거리 언어 문화에 상관없이 동시 경쟁하는 무한경쟁시대의 지구촌'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구상의 나라와 민족들의 운명이 그 지역의 기후와 지리적 특성, 정치·경제적 역량에 따라 좌우되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는 시장과 국가, 그리고 기술이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통합되어 개인·기업·국가들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깊이, 그리고 더 값싸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2000년 이후 인터넷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전세계 어디서든 개인 간 접속이 가능한 '개인의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어 그야말로 지구촌은 '장벽이 없는 평평한 경기장'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세계화 시대에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국제이해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을 견지하면서 민족·국가 간의 상호 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들어나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능력, 세계화에 따른 우리의 과제를 폭넓은 시각에서 생각하는 태도와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어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이해교육에서는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외국어 학습과 함께 세계의 문화 역사 지리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아는 것만큼 보일 것이고 보이는 곳은 우리 아이들의 활동무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주도하는 G7 국가의 경우, 지구상의 모든 곳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세계를 배우고 익히며 자국의 언어 문화, 그리고 역사를 알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중국도 지난 2년간 독일의 괴테하우스를 본뜬 '공자학원'을 세계 38개국 80곳에 세웠고 연내에 100곳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1억 명을 넘은 세계 중국어 학습 인구를 감안할 때 중국 문화의 확산은 중국의 경제성장 못지않게 빠를 것이다.
한미 FTA가 가져올 경제적 실익을 따지느라 온 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때일수록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진정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제적 안목과 지구촌에 대한 이해를 갖춘 미래 세대를 가르치고 육성하는 일이야말로 세계적인 건축물을 세우거나 각종 국제 행사나 대회를 유치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필수 교육과정으로서의 국제이해교육은 시대적 요구이며,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80년대를 전후하여 'global education'(세계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90년대를 전후해 세계교육, 세계시민교육, 또는 국제이해교육이 하나의 지배적인 교육의 흐름이 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우리의 학교현장에서도 국제이해교육이 하루빨리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이욱(원화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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