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세상] PC·TV·게임기 '거실 삼국지'

"홈 엔터테인먼트 우리가 간다"

'거실을 점령하라.'

거실을 차지하기 위한 가전업계와 IT업계 간에 총성 없는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거실이야말로 온 가족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공유 공간이고 홈 네트워크 구축의 중심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실의 터줏대감은 TV였다. 그러나 공부방과 사무실을 평정한 PC진영의 거실 공략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 비디오와 오디오 등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시킨 홈시어터PC(HTPC)가 그 진두에 섰다. 아예 PC를 거실로 옮겨놓는 가정도 늘었다.

TV 진영에서도 거실 지키기에 나섰다. 대형 디지털 TV 보급이 늘어나면서, 텔레비전은 웹 서핑·웹 메일·채팅 등 PC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공중파나 케이블방송·비디오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바보상자'에 머물지 않고 제법 '똑똑한' 정보가전 기기로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PC, 홈 미디어 서버 노린다

PC는 서재나 공부방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있다. PC 진영은 PC가 거실에서 TV와 DVD 플레이어, 셋톱박스 등을 대체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저장하고 제어하는 '홈 미디어 서버'로 역할을 바꿔나간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은 거실에 위치한 홈 미디어 서버를 통해 웹 서핑을 하고 문서 작성 작업 등을 한다. PC에 저장된 동영상 또는 사진을 거실의 TV로 즐겨본다. 홈 미디어 서버는 서재나 공부방의 PC와 유선 또는 무선으로 연결돼 자료를 공유하고 데이터를 주고받는 중추 기기 역할을 수행한다.

세계적인 PC제조업체인 HP 측은 신개념 홈PC를 최근에 선보이면서 "우리의 블루오션은 거실에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매킨토시 컴퓨터로 유명한 애플사는 30년 동안 유지해왔던 컴퓨터사라는 이름을 과감하게 버렸다.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에서 애플사가 선보인 '애플TV'는 이 회사가 더 이상 컴퓨터 업체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가로·세로 7.7인치 크기의 흰색 상자 모양을 한 애플TV는 디지털TV 또는 맥·PC에 유·무선으로 연결된다. 40기가바이트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장착하고 있어 최대 50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저장할 수 있으며 노래 9천 곡과 사진 2만 5천 장을 담을 수 있다.

◆게임기, 홈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을 넘본다

최근 국내에도 출시된 소니사의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은 게임기의 탈을 쓴 홈엔터테인먼트 기기라고도 불린다.

지금의 DVD 화면보다 6배나 선명한 고화질 화면을 보여주는 '블루레이' 드라이브를 기본적으로 달고 있으며, 원거리 서버에서 영화를 내려받아 볼 수 있고 PC 또는 모바일 기기와도 연동된다. 세컨드라이프 같은 3D 가상세계 '홈 월드' 서비스의 셋톱박스 역할도 해낸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지난해 출시한 차세대 게임기 '엑스박스360' 역시 단순한 게임기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옆방의 PC에 저장돼 있는 특정 형식의 동영상과 음악, 사진파일을 불러내 거실의 TV나 오디오로 재생하고 음성·문자 채팅 기능을 지원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CES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나올 제품들은 PC와 고선명 디지털TV(HDTV), 엑스박스360 게임기 간의 경계를 허물 것"이라고 예고했다. 홈 콘텐츠의 중추적 처리·분배·저장 역할을 할 가정용 서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똑똑한 TV, 인터넷 연결로 거실 지키기 나선다

가전업계의 거실 수성 전략도 만만치 않다.

앞으로의 디지털TV는 인터넷과의 연결이 필수가 될 전망이다. 대형 디지털TV가 설치된 거실의 소파에 편히 앉아 리모컨 조작으로 웹 서핑, 이메일 송·수신, 문서 작업 등 그동안 PC로만 가능했던 것들을 TV로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 첨병에는 IPTV가 있다. IPTV는 주문형 비디오(VOD)에 지상파 실시간 방송을 합친 신개념 서비스다. 유럽에서는 이미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국내에서는 법 제정이 표류하면서 서비스가 늦어지고 있다. KT와 하나로텔레콤이 IPTV의 전 단계인 'TV포털' 서비스를 하고 있다.

TV포털이나 IPTV를 즐기려면 별도의 셋톱박스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아예 셋톱박스를 내장한 디지털TV도 출시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 SK텔레콤, CJ인터넷이 최근 공동 발표한 'DTV 포털'(서비스명 365℃) 또한 IPTV와 유사한 개념의 신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가입 절차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특징이다. 인터넷과 연결해주는 전용 셋톱박스만 있으면 IPTV 또는 TV포털이 제공하는 것과 같은 콘텐츠를 유·무료로 즐길 수 있다.

벤처기업인 비플라이소프트의 고민균 상무는 "거실을 차지하기 위한 가전·IT업체의 경쟁은 춘추전국 시대를 연상케 할 만큼 치열하다."며 "어느 포맷이 승리할지는 점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 디지털 융합 새 조류

거실 전쟁에는 가전업계와 컴퓨터업계, 통신업계, 게임업계가 가담하고 있다. 이해 관계에 따라 이 네 진영은 경쟁자가 되기도 하고 합종연횡의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서로의 장점을 끌어들이다 보니 PC와 가전제품, 비디오게임기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른바 '디지털 융합'(digital convergence)이 빚어지고 있다.

TV포털인 '하나TV'를 서비스 중인 하나로텔레콤은 최근 소니코리아와의 제휴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소니사가 최근 출시한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를 하나TV의 셋톱박스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3, 엑스박스360 등 차세대 비디오게임기는 고사양 컴퓨터와 맞먹거나 웃도는 성능을 지녔다. 기존 셋톱박스와는 비교가 안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KT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360 등 차세대 비디오게임기를 셋톱박스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현재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의 CPU(컴퓨터 중앙처리장치) 제조사인 인텔도 거실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인텔은 당초 PC로서 거실에서 TV를 밀어내려 했지만, 최근 전략을 수정했다. 인텔은 최근 가전제품에 최적화된 시스템 온 칩(SoC)인 '인텔 CE2110'을 2008년 출시한다고 밝혔다. 이 칩을 이용해 PC·TV·셋톱박스를 만들면 서로 연동이 훨씬 쉬워지게 된다. PC든 TV든 자사의 CPU를 쓰게 하면 된다는 실용론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인텔 디지털홈 그룹의 에릭 김 부사장은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모든 콘텐츠를 하나의 장치에 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여러 장치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조류"라고 말했다.

최근 출시된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는 소니사가, 엑스박스360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해 출시했다. 고화질TV에 대응하는 선명한 화질과 5.1채널 입체음향을 지원하며, 멀티미디어 정보를 처리해 TV로 보내고 다른 정보기기와 연동되는 등 종합 홈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 프로토콜 텔레비전(Internet Protocol Television)의 약자. 인터넷에 연결된 신개념의 TV 서비스를 말한다. 이론적으로 수백 개의 채널을 구현할 수 있으며, 쌍방향 서비스도 가능하다. 한국 IT 및 정보가전 산업을 재도약시킬 잠재력이 있는 분야로 평가되지만, 방송과 통신업자 등 관련업계의 '밥그릇' 싸움에 밀려 서비스가 늦어지고 있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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