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테리어 전쟁, 마당으로 옮겨가다

단지 꾸미는데 수십억 투자…브랜드 관리위해 조경 경쟁

▲ 주택업체들이 단지내 조경과 외관 차별화 경쟁에 나서면서 아파트가 달라지고 있다. (사진 위.가운데)달성 래미안 단지내 조성된 정자와 실개천, 녹지로 덮인 래미안 단지내 중앙광장. (사진 아래)단지 입구에 그루당 2천만원 짜리 거수목을 심어 놓은 칠곡 한라하우젠트 단지.
▲ 주택업체들이 단지내 조경과 외관 차별화 경쟁에 나서면서 아파트가 달라지고 있다. (사진 위.가운데)달성 래미안 단지내 조성된 정자와 실개천, 녹지로 덮인 래미안 단지내 중앙광장. (사진 아래)단지 입구에 그루당 2천만원 짜리 거수목을 심어 놓은 칠곡 한라하우젠트 단지.

아파트의 변신이 한창이다.

콘크리트와 단조로운 도색, 성냥갑을 닮은 획일적인 외관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이미지를 도입한 단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아파트가 등장한 지 40년, 그동안 금기시돼 왔던 붉은 색 톤과 노란 색이 외벽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단조로운 외관은 톡톡 튀는 모양으로 '성형'을 시작했다. 또 지하로 내려간 단지 내 주차장 자리에는 오솔길과 실개천 등 자연 친화적인 녹지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하면서 입주민들이나 주택업계에서 '화제'가 되는 단지를 둘러봤다.

◆공원을 품으세요

북구 학정동 한라하우젠트 1·2차 단지. 단지 입구에 들어서면 눈길을 끄는 '낙락장송' 3그루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한 그루당 가격이 식재비를 포함 2천만 원이 넘습니다. 돈은 둘째 치고 모양새 좋은 나무를 구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전북 정읍에서 겨우 구했습니다." 한라주택 임덕기 공사지원본부 이사는 단지 조경에 쏟은 정성이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정읍에서 실어온 소나무의 수령은 150년 이상 된 것들로 높이가 10m를 넘는다. 한라주택이 조경 면적 2천500여 평인 단지 내에 심은 나무는 1천500여 그루, 쏟아부은 비용은 20여억 원에 이른다. 담장을 없앤 자리에 왕벚나무 꽃길을 만들고 단지 뒤편 산책로에는 잔디 블록을 까는 등 단지 내 녹지는 웬만한 공원을 능가할 정도다.

임 이사는 "예전에는 실내에만 신경을 기울였지만 요즘은 조경이 잘된 단지란 입소문이 나면 업체마다 경쟁적으로 견학을 할 정도로 조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자연친화적인 단지를 선호하는 입주민들의 선호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성군 '대곡역 래미안 달성'은 내달부터 입주를 시작하지만 10여 년 묵은 아파트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잘 자란 나무들이 단지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1천400가구인 '달성 래미안' 단지의 조경 면적은 6천여 평. 이곳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등 교목 56종 3천 그루와 관목 1만 4천 주, 60여 종에 이르는 초본 8만 주가 심겨 있다.

특히 단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파트 건물만 쏙 빼면 마치 '식물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

대곡 래미안 김종혁 현장 소장은 "나무 안착을 위해 마감공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1년 전부터 심은 나무들도 상당하다."며 "밤이 되면 소나무와 느티나무 오솔길 등이 야간 조명과 어울려 걷고 싶은 욕구가 저절로 생기게 된다."고 했다. 단지 외곽을 흐르는 150m 길이의 실개천에는 1급수에만 사는 쉬리와 피라미 등 8개 어종 1천여 마리가 있으며 실개천 끝자락에는 정자가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친환경은 아파트 가치를 높인다

주택업체들이 단지내 조경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브랜드 가치와 직결되기 때문.

화성산업 권진혁 영업부장은 "아파트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실내는 말 그대로 호텔 같은 수준이 됐고 업체마다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기도 힘들어졌다."며 "이제는 실외 조경으로 관심이 몰리면서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는 웰빙, 친환경에 대한 입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단지내 녹지 공간이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2004년 이후 분양된 아파트 중 주상복합을 빼고는 지상 주차장을 설치한 단지는 손에 꼽을 정도. 전체 부지 중 20, 30%를 차지하는 지상 주차장을 녹지로 조성하기 위해 대다수 단지들이 주차장을 지하로 끌어내렸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입주 단지에서 발생되는 주요 민원 사항 중 하나가 '조경'이 됐을 정도. 주택업체 관계자는 "조경수 수종은 물론 굵기나 수령 등에 대해서까지 꼼꼼히 타 단지와 비교한 뒤 문제를 제기하는 단지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에 따라 조경 공사가 아파트 시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획일적인 외관은 가라

몇 달 전부터 입주를 시작한 수성구 만촌동 대림e-편한세상(수성 2차단지). 이 단지는 '아파트 외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외관 도색에 노란색과 적색, 회색 등 다양한 컬러가 동원됐으며 동마다 다른 디자인이 세련된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이곳은 시공사인 대림산업이 자체 개발한 토털 디자인 개념을 적용한 단지. 정진홍 차장은 "아파트 색채는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공공성을 띠고 있으며 입주민들의 심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단순하고 피상적인 아파트 디자인을 벗어나기 위해 신개념 디자인 공법을 연구해 왔으며 수성 2차는 그 결과물의 하나"라고 밝혔다. 수성 2차 단지에 적용한 방식은 자연소재의 컬러를 사용해 생기와 활력을 주는 악센트 스타일로 20여 차례 현장 샘플 시공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는 것이 대림 측의 설명.

달성 래미안 단지는 건물 끝 부분에 위치한 발코니를 곡선형의 라운드 모양으로 처리, 시원한 느낌을 주며 옹벽과 담장에는 자연미를 가미한 거푸집을 사용해 칙칙한 이미지를 벗어나고 있다. 칠곡 하우젠트 또한 지하 주차장 진입로 위편에 남은 공간을 이용, 방부목으로 중앙 광장을 만들고 일부 건물 동 저층부에는 목재로 외관을 둘러,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고 있다.

주택업계 관계자들은 "입주 단지가 몰려있는 지역에서는 조경과 외관에 대한 자연스런 비교가 되는 탓에 현장 담당자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라며 "아파트 브랜드 관리를 위해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 부분 설계 변경을 통해 조경이나 외관 꾸미기에 수억 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붓는 단지도 많다."고 밝히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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