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엔 고층 아파트 단지 저너머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바다는 보이지 않는데 갯내음이 코끝에 밀려든다. 재작년 3월초, 그곳에 갔을땐 갈대가 갯벌을 뒤덮고 있었다.
그곳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도시에, 그것도 145만 평이나 되는 갯벌이라니…. 더구나 드문드문 서있는 30여 채의 소금창고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한 독특한 정취를 안겨준다. 목제 소금창고는 오랜 風雪(풍설)에 낡을대로 낡았다. 그러나 廢家(폐가)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도 불구, 이상한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1930년대에 조성됐던 소래 鹽田(염전). 이곳 소금은 부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됐다. 민족사의 아픔이 밴 곳이다. 경기만 최대 염전으로 이름 날리다 채산성 악화로 1996년 7월 31일자로 廢鹽(폐염)됐다. 오로지 소금창고들만 70여 년간 비바람을 견뎌오고 있다.
이제 폐염전은 생태계의 寶庫(보고)가 되고 있다.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갯골(갯벌의 꼬불꼬불한 골짜기)에는 사방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는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 鹽生(염생) 식물들과 어패류들이 터잡고 있다.
이곳 폐염전의 소금창고 수십채가 최근 갑자기 사라졌다. 시흥시가 2010년까지 갯골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아래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던 중 이곳에 골프장 건립을 추진하던 소유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철거한 것이다. 시흥 시의회가 즉각적인 항의와 함께 소금창고 원상복구를 결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사안은 등록문화재 지정의 문제점을 또 한 번 노출시켰다. 2001년 근대문화제 등록제 도입 이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예고된 후 지정 취소된 사례가 올해 4월 현재 19건이나 되며, 소유주가 철거한 사례도 6건이다. 문화재로 등록될 경우 혜택은 적고 규제는 많은 탓이다. 문화재 지정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철거 신고제도 허가제로 바꿔야 무분별한 철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보존가치 있는 문화유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 빨리 관련 제도나 법규를 재정비해야 할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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