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반공과 관련한 글짓기, 표어, 포스터 과제물로 무척 짜증이 났던 6월이다. 더구나 웅변대회 때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울분을 토해 가며 소리를 지르던 것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난다. 순국선열에 대한 고마운 마음보다 누군가에 대해 분노와 적개심만 가지던 호국·보훈의 달이었다. 지금은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월드컵 같은 국가대항전이 열려야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걸 실감할 정도다. 학생들의 소속감이나 애국심이 예전에 비해 많이 옅어진 것 같아 염려스럽다. 오늘 수업시간에 한통의 편지를 소개했다. 포항시 용흥동 탑산 아래에 있는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에서 본 편지다.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敵)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 지금 내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내복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오늘 제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과 형제들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들이키고 싶습니다.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의 상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편지다. 당시 17~19세의 학생들이 책 대신 총을 들고 군번도 철모도 군복도 없이 전투에 참가했다. 11시간 30분 동안의 치열한 전투로 포항시민 20만 명과 관공서 각종 주요 서류가 무사히 형산강 이남으로 이동될 수 있었지만, 학도병 71명 중 48명이 전사했다. 이 편지의 주인도 그 중 한 명이다.
편지가 낭송되는 동안 학생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아마도 자신의 또래가 느꼈을 죽음의 공포와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에 공감되었나 보다. 살아 있다면 70대 후반의 할아버지. 바로 나의 아버지이자 학생들의 할아버지다. 6·25전쟁을 겪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지금의 풍요가 다 그분들의 노고 덕분임을. 그분들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날씨가 후텁지근하다. 오늘 구내식당에 상추쌈이 나왔으면 좋겠다.
손삼호(포항제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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