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단오날에 주먹을 쥐면

얘야, 단오(端午)가 되었구나.

단오가 되니 오(午)라는 한자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구나.

옛날 어느 곳에 한 청년이 살았단다. 이 청년은 할아버지가 높은 벼슬을 지낸 훌륭한 선비 집안이었단다. 그런데 이 청년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대.

집안 어른들이 아무리 공부를 시키려해도 게으름을 부린 탓이지.

어느 날 마을 아이들이 이 청년의 방문 앞으로 왁자하게 몰려왔대.

"이 두 글자가 어떻게 다른지 이 방에 들어가서 물어보자."

"그런데 이 방에 있는 아저씨는 글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던데……."

"그래도 글은 알 거야. 대제학을 지낸 선비 집안인데 이렇게 간단한 글자를 모르겠어?"

이윽고 아이들은 방문을 두드렸어.

그러자 그 청년은 얼른 눈을 감으며 딴청을 부렸어.

'자는 척하자. 글자도 모르는데 공연히 나섰다가는 창피를 당할 테니…….'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자 아이들은 투덜거렸어.

"에잇, 또 자는 척하는가 봐. 전에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지는 척 했잖아."

"그러게 말이야. 아마도 까막눈인가 봐."

아이들이 물러갔어. 그런데 아이들이 두고 간 종이에는 '午'와 '牛'라고 씌어있었어.

청년은 종이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지.

'아니, 이건 위에 획이 하나 더 있고 없을 뿐 거의 똑같잖아. 이걸 어떻게 구별하지? 휴우, 자는 척하기를 정말 잘 했네. 그런데 왜 이렇게 부끄러울까?'

그 순간, 청년은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쥐었어.

'그래, 나는 지금까지 게으름을 너무 많이 부렸다. 앞으로 글공부를 많이 하여 선비답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이 주먹을 펴지 않으리라."

그 때부터 이 청년은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단다.

"입 구(口)에 열 십(十)을 합치면 밭 전(田)이 된다. 입 열 개 즉 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곡식이 나오는 곳이 바로 밭이니까……. 그리고 그 밭을 가꾸는 힘이 있어야 남자(男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자 남(男)이라는 글자에는 밭(田) 밑에 힘 력(力)이 붙어있잖아. 하하하. 이렇게 공부하면 되겠어."

또 청년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묻곤 하였단다. 그리하여 이 청년은 마침내 '午'와 '牛'의 차이도 알아내게 되었지.

"그래, 매우 쉬운 글자인데도 겁을 내었어. '午'는 말을 나타내고 '牛'는 소를 말해. 말은 뿔이 없고 소는 뿔이 있잖아. 그러니까 '午'는 '말 오'자이고, '牛'는 '소 우'자인 거야. 하하하!"

글자의 뜻을 알아낸 청년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어. 혼자서 덩실덩실 춤도 추었단다.

그리하여 이 청년은 마침내 큰선비가 되었어. 그가 글공부를 하여 과거에 급제를 한 다음 비로소 주먹을 폈는데, 글쎄 그 동안 자란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들어갔다고 하는구나.

무슨 일이든지 정신을 모아 열중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이란다.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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