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서정춘 作 저수지에서 생긴 일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저수지 전체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도로 내립다 칠 때는 결코 숨가쁜 잠행 끝에 한 번쯤 자기 힘을 수면 위로 뿜어 내보인 것인데 그것도 한 순간에 큰 맘 먹고 벌이는 결행 같은 일이기도 하다

어이쿠! 저놈 봐라. 마른하늘에서 날벼락 떨어지듯 못물을 쩡! 갈라놓는구나. 방금 물 바깥으로 잠시 고개 내민 것, 그것이 무엇이던가. 무쇠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이 좀팽이의 뒤통수를 '내립다' 후려치는 억센 힘. 숨 한 번 힘껏 들이마시고 내쳐 읽어야 하는 한 문장으로 된 시, 장쾌하구나. 긴 문장의 급박한 리듬이 '숨가쁜 잠행' 끝에 '벌이는 결행'을 실감나게 해주는구나.

그런데 세 단락으로 되어있는 이 문장은 왜 이음매가 보이지 않지.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원리가 규정 문법의 위반. 첫 번째 단락과 두 번째 단락 사이의 '결코'와 두 번째 단락과 세 번째 단락 사이의 '그것도'의 부자연스러운 용법. 이러한 위반의 어법에 의해 의미소들은 콘크리트처럼 뭉쳐지고 있다.

언어 바깥에 있는 시 문맥에서 문법이나 세세하게 따지며 나날이 좀팽이가 되고 있는 나여, "저수지 전체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도로 내립다 칠" 결행의 순간이 내 삶에도 과연 있기는 있겠는가.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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