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천지가 새롭다'…백두산 남파 트레킹

본격적인 백두산 트레킹의 계절이 돌아왔다.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 백두산의 봄은 7월까지 한창이다. 1년의 대부분이 겨울인 백두산에도 초록 카펫이 깔리고 형형색색의 꽃이 백두의 초원을 뒤덮는다.

봄이 한창인 백두산 남파(南坡)에 올랐다. 지금까지 남파 코스는 미답의 처녀지였다. 남파 지역은 제운봉, 와호봉, 관면봉 등 백두산 외륜을 따라 북한과 중국을 가르는 국경지대로 천지를 바라볼 수 있는 능선 부분은 거의가 북한 땅이다. 북한 땅을 밟으며 백두산을 답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백두산 여행이라면 차를 타고 천문봉 아래까지 올라 천지를 굽어보거나 천지폭포(장백폭포) 곁을 걸어올라 천지 물가까지 다녀오는 북파 코스, 청석봉 아래 5호 경계비 능선에 올라 천지를 조망하는 서파 코스 등이었다. 북파·서파 코스는 심심했다. 너르고 웅장한 품을 한 언덕만 올라보고 다 느꼈다고 할 수 있을까. 남파 코스는 백두산을 조금 더 색다른 각도에서 느낄 수 있다.

남파 답사는 압록강 줄기를 따라 오르며 시작된다. 중국의 장백조선족자치현과 북한의 양강도 혜산시가 맞닿는 지역이다. '길림장백산국가급자연보호구관리국 횡산관리점'에서 사륜구동차를 타고 가며 내다본 차창 밖의 풍경 속에 압록강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갓 포장한 듯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하얀 시멘트 말뚝이 줄지어선 강어귀가 보인다. 말뚝들은 가느다란 철사로 북한과 중국, 두 나라를 가르고 있고 그 철조망 너머 북한 쪽 산기슭을 따라 압록강이 흐른다.

도로를 따라 30분 정도를 더 오르면 가파른 산길 정면에 거대한 압록강 대협곡이 나타난다. 잘 벼른 칼날을 거꾸로 꽂아 놓은 듯 뾰족한 바위들이 커튼을 드리운 듯 주름잡힌 협곡 좌우로 늘어서 있다. 여러 갈래로 갈라져 달리는 협곡은 전체 폭이 200~300m, 깊이가 100~200m에 이른다. 보이지 않는 협곡 밑바닥에서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압록강이 발원하는 곳이다.

협곡을 지나 새잎이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사스레나무 군락지를 지나 다시 달리다 보면 거대한 초원이 펼쳐진다. 이곳은 수목생장한계선(해발 1,700m)이다. 나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고 풀꽃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막 들꽃 세상을 펼치려 한다. 고산화원의 푸른 초원은 벌써 노랑, 빨강으로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이름도 모르지만 하나하나가 소중한 우리 풀꽃들이다. 6월 말쯤 되면 천지 아래 초원이 온통 꽃천지를 이룰 것이다. 군데군데 도로 옆으로는 얼음과 잔설이 두껍게 쌓여 있지만 그래도 봄은 이 높은 고원까지 훈풍을 불어올리고 있다.

초원을 가로질러 오르니 하늘을 찌를 듯한 제운봉(2,543m)이 다가선다. 북한과 중국의 경계에 선 봉우리인 제운봉 아래 와호봉으로 흐르는 안부 한쪽에는 북한과 중국이 그어 놓은 국경을 따라 4호 경계비가 있다. 그 4호 경계비의 산 아래 쪽은 중국 땅, 천지 쪽은 북한의 영토이다.

비석을 지나 천지 쪽으로 내딛는다. 시야가 트이며 눈 아래로 천지가 두꺼운 얼음에 덮인 채 모습을 드러낸다. 봉우리와 호수가 빚어내는 장쾌한 한편의 파노라마다. 그 파노라마 안에서 사람은 감탄의 말조차 잊어버리고 작은 점이 된다. 이곳은 북한땅이다. 북한 군인이 국경을 지키며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는다고 한다. 답사팀이 도착했을 때는 약간 늦은 시간이라 북한군은 철수했다고 한다.

눈을 돌려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고원지대를 내려다봤다. 새순을 틔우려는 사스레나무의 바다가 펼쳐진다. 고원이 그 몸피의 색을 받아 하얗게 보인다. 울퉁불퉁 거인 팔뚝의 힘줄처럼 뻗어나간 용암대지와 노랑·빨강으로 물들어가는 초원…. 모두 눈에 꼭꼭 담아 잊고 싶지 않다. 언젠가 남의 땅을 밟지 않고 우리 땅을 두 발로 걸어 다시 올 것이다. 기다려라. 백두산아!

글·사진 홍헌득기자 duckda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