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류시원 作 희미한 다리

내 육체는, 내 마음은 풀잎과 구름과 염소와 당나귀와 바람과 꽃과 안개와 소의 뿔과… 이런 것들의 살로 된 게 아닐지 그렇지 않고서야 내 마음이 어찌 이토록 그들을 아는 체한단 말인가 새벽거리엔 어제의 슬픔 가득 떠올라 안개 자욱하다 내 마음에도 안개 자욱히 일어난다 그들의 살이 날 자욱히 채워오듯 내 죽으면 내 살들이 그들의 얼마쯤을 채우리라 웅크리다 돌이 되어버린 마음들, 안에서 바깥으로 길을 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오늘 아침, 강을 헤치고 번쩍거리며 떠오른다

왜 동물은 동물이고 식물은 왜 식물인가. 인간은 왜 인간이고 돌멩이는 왜 돌멩이인가. 우리는 모두 별의 자식, 어머니 우주의 한 형제이니 모든 경계는 모조리 지워져야 마땅하리라. 어제 내가 먹은 상추가 내 살이 되고 내일의 내 살은 썩어 배추가 될 것이니, 너와 나는 이제 저 '희미한 다리'로 오가야 마땅하리라.

돌멩이처럼 웅크리고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 마음들이여, 안개가 빚어내는 저 '희미한 다리'를 통해 너와 나의 경계를 지워나가자. 이쪽도 저쪽도 아닌, 참도 거짓도 아닌, 삶도 죽음도 아닌 경계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자. 바람의 애인, 안개의 정부인 너와 나는 하나가 되어 '번쩍거리며' 떠오르는 내일의 해를 눈사람처럼 굴리며 나아가자.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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