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현명한 유권자

민주적 공화정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루소는 인간은 자유선택 능력에 의해 소외와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유와 정치적 의무의 결합이 가능하며, 민주적 자치의 작동 원리인 '보편의지'도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편의지란 공동선을 위해 각 개인이 상반되는 이해와 정념을 버리겠다는 의지로, 모든 사람의 이성속에 내재있다고 루소는 상정한다. 결국 루소의 생각에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본성적으로 선한 국민'이 전제되어 있다.

과연 그럴까. 나치당은 1919년 결성 당시만 해도 사회불만세력의 모임 정도 수준이었으나 1차 대전 패배후 독일에 몰아닥친 경제파탄과 사회혼란의 틈을 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했다. 1928년 12석에 불과했던 나치당은 4년만에 230석을 차지한 제1당이 됐고 이듬해인 33년 히틀러는 총리로 취임했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독재자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한 것이다.

무솔리니의 집권 과정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의 파시스트당은 전후 혼란의 와중에서 사회주의의 세력확장에 불안을 느끼던 보수파의 지원을 업고 선거를 통해 제도권에 진입했다. 정권 장악 마지막 단계에서 파시스트 민병대인 '검은 셔츠단'의 로마 진군이라는 '공갈'을 동원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최근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의 브라이언 카플란 교수는 '이성적 유권자의 신화'라는 저서에서 "민주주의가 좋은 정책을 낳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며 1인1표제 같은 민주적 원칙에 회의론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은 여론조사 분석 결과 유권자가 주요 경제현안에 대해 비경제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비이성적인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유권자는 어떨까. 지난 재.보선에서 수뢰혐의로 실형을 산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시민단체의 반대를 뚫고 당선된 것은 비이성적 투표일까 아닐까. 대통령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며 선거중립의 원칙을 깨겠다는 현직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현명하게 판단한 것인가 아닌가. 이같은 문제제기는 매우 위험하다. 잘못하다가는 '수구' '반민주'로 난도질당하기 십상이다.

民(민)은 자각한 '민중'이 될 수도 있고, 무책임하고 맹목적이며 특정 세력에게 휘둘리기 쉬운 '군중'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국민은 이 둘중 어떤 것이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정경훈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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