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대통령선거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며 결국 누가 당선되느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대선이라는 제도 자체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느냐는 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4년 중임제를 채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민의 지지도가 높지 않은 대통령이 하필 임기 말에 추진한다는 점에서 역풍을 맞고 말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거론한 4년 중임제 개헌은 이론상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5년 단임제를 근간으로 하는 '87년 체제'는 이제 청산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5년 단임제는 타협의 산물이었고 그 타협의 주역들은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5년 단임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줄줄이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난 20년의 정치사는 상당 부분 이 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취임 초기 과도한 의욕에 사로잡히기 쉽다. 5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도 짧고, 다시는 선거를 치르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재평가를 받아서 다시 한 번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크다. 무언가 업적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조바심은 결국 많은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더 이상의 표가 필요하지 않기에 국민들과 함께 가려 하지 않고 앞서가거나 가르치려 든다.
다행히 잘 나갈 때는 좋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랬듯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지지도가 하락하면 5년 단임제는 최악의 상황을 빚어낸다. 모든 것에 의욕을 잃은 식물대통령이 되거나 '역사가 평가한다'는 식의 독선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넘겨주어야 할 것은 넘겨줄 준비를 해야 할 임기말이 이전투구의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이유다. 5년 단임제는 당사자에게는 가혹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흔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잘할 수 있는 근거인 '경험'을 단임제의 대통령은 혼자 가슴에 한으로 묻어야만 한다.
다음으로 내각제가 아닌 순수 대통령제를 고수할 생각이라면 부통령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국무총리는 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서 그 위상에 너무 차이가 난다. 만에 하나 대통령 유고시에 정치적으로 그 역할을 대행하기가 쉽지 않다. 가령 지난 1979년 10·26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국정의 2인자였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현재의 총리로는 일단 유사시 국정의 연속성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부통령제는 차기 주자를 키울 수 있고 검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 출사표를 던졌거나 거론되고 있는 후보군들을 한 번 살펴 보자. 아직 대통령감은 아니지만 부통령이라면 적임자일 것 같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무모하게 대선가도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부통령 혹은 부통령 후보라는 중간단계를 거친다면 개인으로서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고 국가로서는 더 많은 인재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고려해 보았으면 한다. 지금의 상황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한나라당은 어떻게든 경선을 통해 후보가 가려지겠지만, 이른바 범여권의 경우 그 이름을 다 떠올리기도 힘든 군웅할거의 판도가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 아직 감이 잡히질 않는다.
과연 단일화가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도 있다. 소속이 다르고 신념이 다른 사람들을 한 무대에 올려놓고 열에서 대여섯으로, 다시 두엇으로, 하나로 압축해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후보들이 회복하기 쉽지 않은 상처를 입을 것인가?
선거만을 의식한 무리한 단일화가 화학적 결합에 이르지 못할 경우의 부작용 또한 우리는 많이 겪어보지 않았던가. 결선투표제는 이런 문제들을 긍정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능력이 있고 나름대로 지지층이 있는 후보들은 모두 1차투표를 치르면 되는 것이다. 단일화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 정치공작을 펼치고 담합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최종 당선자는 당연히 50% 이상의 지지를 받게 된다. '4자 필승론' 따위의 해묵은 담론들도 효력을 잃게 된다.
생각해 보자. 6월 항쟁으로 이루어낸 '87년 체제'가 4년 중임제에 정·부통령제, 그리고 결선투표제를 채택했다면…. 늦었지만 다음 정권에서는 심각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고원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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