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영취산 자락을 끼고 동서로 길게 가람을 배치한 형상을 띠고 있다.절을 품고 있는 영취산(靈鷲山)은 석가모니가 말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한 곳이 인도의 산 이름과 같다. 팔만대장경 중 부처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중생을 위해 어렵다는 불법을 방편에 비춰 설파한 묘법연화경은 바로 이 영취산 설법에서 전해진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상회상'은 이때의 장관을 가리킨다.
절터의 명성에 걸맞게 통도사는 또한 불보(佛寶)사찰이기도 하다.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온 신라의 자장대사가 중국에서 가지고 온 부처의 가사장삼과 진신사리가 봉인돼 있기 때문이다. 자장은 통도사를 창건하면서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이 곳에 안치했다.
이 후 금강계단이 있는 통도사는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절이 자리한 산 모습이 부처가 설법한 인도의 영취산과 통한다고 해 통도사요(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출가한 승려가 모두 금강계단을 통해 계율로서 득도한다는 뜻에서 통도사이며(爲僧者 通而度之), 모든 진리를 깨달아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역시 통도사이다(通萬法 度衆生).
1천 300여년이 흐른 현재. 이런 까닭에 통도사는 깨침의 구도를 좇는 승(僧)과 번뇌를 잠재우려는 중생의 귀의처로서 그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축총림 통도사=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가 창건했으며 영취산 지형과 원융하게 조화를 이룬 가람이 불국토의 전형으로 유명하다. 1984년 총림으로 승격됐으면 현재 원명(圓明)스님이 방장으로 주석하고 있다.
때마침 내린 비 때문인가. 붉은 속살을 드러낸 소나무와 초여름의 짙은 녹음은 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주체할 수 없는 녹색의 향연에 취해 있다. 산문 초입의 무풍교(舞風橋)를 건너자 산들바람이 춤을 춘다. 아직은 부처의 세계에 들기 전, 번뇌의 바람은 잔뜩 찌푸린 하늘처럼 심술궂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도열한 숲길을 따라 들자 금빛 찬란한 '영취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현판 아래 '불보종찰, 국보대찰(佛寶宗刹 國寶大刹)'이라는 웅혼한 필체의 대련이 돋보이는 일주문이 반긴다. 부처의 진신사리을 모신 적멸보궁이자 계율의 근본도량이라는 의미에서 불보요, 국보급 큰 절이라는 알림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흔들림 없는 불법의 실천과 청청한 계율을 지켜온 통도사의 내력을 전함이런가. 일주문과 이어지는 천왕문 좌우엔 수령이 족히 수백 년을 넘을 듯한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뻗었고 표면엔 청이끼가 피어있다.
승(僧)과 속(俗)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주문을 지나 들어선 천왕문. 여기서부터 부처의 세계다.
속세의 욕망과 번뇌가 근접하지 못하도록 눈을 부라린 사대천왕이 거처하는 통도사 천왕문 천장엔 대들보가 없었다. 대신 나무로 조각된 코끼리와 호랑이 상이 양편에서 마주보고 있다. 불교우화에 의하면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자비와 지혜 행의 상징으로 타고 다니는 동물들이다.(호랑이는 사자로 나타내기도 한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통도사 가람배치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부처세계의 구현이다.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 등 3개영역을 나뉜 경내는 영취산을 등받이 삼아 동서로 길게 늘어선 형상이다.
하로전은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 영역으로 극락보전, 영산전, 약사전의 3개의 불전과 범종루, 만세전이 마당을 에워싼 형식을 취하며 중로전은 불이문부터 세존비각까지 전각들로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 3전각이 하나의 중심축에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통도사의 중심인 상로전은 금강계단(金剛戒壇)과 대웅전을 정점으로 한다.
빛바랜 단청, 속을 훤히 드러낸 나무기둥이 오히려 고색창연한 극락보전은 극락세계에서 영원히 평안한 삶을 누린다는 무량수전의 또 다른 이름. 가사장삼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승이 홀로 서서 '나무아미타불'을 되뇌이고 있다. 파르라니 깍은 뒷머리가 깨달음의 길을 밝히듯 승은 그렇게 혼자서 염불삼매경에 빠져든다.
미래불인 미륵불을 봉안한 용화전은 불교적 미래세계와 이상세계의 상징이다. 전각 측면에 문이 나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안은 용머리와 연꽃, 봉황이 조각돼 있다. 용화전 앞 봉발탑은 통도사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탑 양식이다.
석가모니 법을 상징하는 발우를 형상화한 이 탑은 미래불의 출세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아래 사각 기단은 부처 진신사리가 있는 금강계단을 향해 엇각으로 조성돼 있다.
관음전은 중생이 번뇌를 씻는 곳으로 석가모니가 생전에 입고 있던 금란가사가 보관돼 있다. 전각 앞에 있는 8각 기둥의 석등은 깨달음을 위한 실천법인 37가지의 실천법(37조도품)이 형상화 되어 있다.
오른편에 솟을대문 양식의 개산조당이 눈에 띄는 대웅전은 통도사 최고의 성역으로 통한다.
지붕이 丁형의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 대웅전은 정면과 측면의 구분 없이 동, 서, 남 세 방향에서 보이는 정면성이 모두 똑같아 불교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뒤편에 부처의 정수리 사리를 비롯한 각종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이 있어 정작 대웅전 안엔 불상이 없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다. 금강계단은 2단으로 석단을 쌓고 그 위 중앙에 석종형의 사리탑을 얹고 네 귀퉁이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배치했다. 다시 그 둘레에 낮은 벽을 치고 천인상(天人像)을 새겨 놓았다. 대나무 숲과 적송이 병풍처럼 둘러진 이 곳 사리탑 위로는 새들도 날아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번뇌를 멸하고 영원한 선정(禪定)에 든 부처의 사리가 있음을 미물마저도 알아차렸음일까. 구름위로 솟아있는 영취산 푸른 봉우리들이 더욱 싱그럽다.
그 봉우리들을 따라 승가의 총림답게 통도사에는 13개 암자가 딸려있다.
이 중 극락암은 통도사 최고의 절경 터이다. 극락암 왼편 주차장에 서서 시선을 통로인 여여문(如如門)과 영취산 정상을 일직선으로 바라보면 암자 용마루지붕과 대나무 숲, 소나무 군락, 영취산 정상이 차례로 중첩되는 절경은 차라리 한 폭의 수채화이다.
현재 극락암은 영축총림의 선원(禪院)인 까닭에 수도승들이 깨달음을 향한 하안거(음력 4월 15일~7월15일)에 들어있다. 작은 아치형 돌다리가 놓인 암자 앞 작은 연못엔 하얀 연꽃이 피어 구도의 길에 몰두한 수좌들의 용맹정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고즈넉한 절집에 불어온 소슬바람에 놀란 풍경이 요란히 울어대던 안양암은 단청작업이 한창이었고 꽃과 나무로 단장한 비로암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쳐다보던 영취산 풍경이 세속의 잡념들을 걷어가는 것 같은 운치가 있어 좋다.
통도사는 이렇듯 부처의 세계를 원형 가깝게 표현한 불전(佛殿)과 암자가 있어 오늘도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통도사 가는 길=경부고속도로 통도사 나들목을 빠져나와 35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통도사 입구 네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해 이정표를 따라가면 영축산문이 보인다.
◇여행팁
통도사 일주문 앞에 있는 통도사성보박물관은 4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불화와 통도사 불교관련 유물 등 2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소장 유물은 약 3만점으로 2개 전시실엔 통도사 역사와 불화를 전시하고 2개 전시실은 교체와 기획전 중심으로 운영된다.
박물관 중앙 홀에 들면 대형 괘불화가 눈에 띄는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괘불 80여점이 6개월마다 교체전시하고 있다.
특히 어린 시절을 통도사에서 보냈고 당시 통도사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의학박사가 된 김진조(현재 부산에서 내과의원 운영) 씨가 평생 모은 개인 소장품을 모두 희사한 특별 전시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자신이 쌓은 공덕을 타인에게 되돌리는 회향의식은 불교에서 중요한 종교적 실천에 속한다. 김 씨는 이런 회향의 일환으로 자신의 전 미술품을 성보박물관 개관과 동시에 희사했던 것이다. 이응로 화백의 작품을 비롯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걸출한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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