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문씨는 34년째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서 3만 6천평의 벼농사를 홀로 짓는다. (현재는 맏아들이 농사를 짓고 이영문씨는 경남 사천시 석포면 별학섬에서 종자연구중이다.)그는 논을 갈지도 않고 종자를 소독하지도 않는다. 모내기를 하는 대신 씨앗을 그냥 뿌린다. 비료 한 알갱이, 농약 한 방울 쓰지 않는다. 그저 씨뿌리고 수확하는 게 일이다. 그래도 생산량은 '관행농법'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영문씨가 생산한 쌀은 일반 쌀보다 비싸게 팔린다.
◇ 땅을 살리면 농사는 저절로
이영문씨가 처음부터 농사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그는 기계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고, 청년이었다. 처음에는 농기계 수리점을 열었다. 농기계 관련 자격증도 많다. 농업기계 기능사, 농업기계 정비 기능사, 산업기 기능사, 자동차 농기계 특허 출원…. 직접 농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농기계에 관심을 갖던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농기계가 정교해질수록 수확량이 적더라는 것이다. 이상한 현상을 접하고 직접 실험을 했다. 기계로 땅을 간 논, 소로 간 논, 땅을 갈지 않은 논을 비교했던 것이다. 땅을 갈지 않은 논의 벼가 훨씬 잘 자랐다. 그는 원인을 추적했다. 문제는 흙이 얼마나 건강한가에 달려 있었다. 흙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농약과 비료를 주지말고 자연상태로 복원시켜야 함을 깨달았다.
이영문씨가 혼자 3만 6천 평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걷기만 하는 이른바 '게으른 농법'을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른 땅의 수확량이 '관행농법'을 이용하는 인근의 다른 논과 수확량에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경상대학교 농과대학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5년 평균 수확량이 '관행농법'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 태평농을 바라보는 시각
이영문씨는 무논이 아니라 마른 땅에 볍씨를 뿌린다. 땅을 로터리로 갈지도 않고, 모판을 내지도 않는다. 농약이나 비료는 더구나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정신 나간 놈' 이영문씨의 '태평농법'을 비판하는 말은 많다. 나이 지긋한 농민들 중에는 '내 평생 농사를 지었다. 당신 방식대로 하면 농사 망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영문씨는 이렇게 되묻는다. '모판은 언제 내시는지? 왜 그때 내시는지? 벼 마디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지?'
목청을 높이던 사람들은 대답을 못한다. 이영문씨가 그렇게 되물었던 것은 '평생동안 농사를 지었다고 하지만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한 것일 뿐 면밀한 관찰이 없었다.'는 점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이영문씨의 농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농민과 귀농을 꿈꾸는 예비농민들도 많다. 그들은 배우고 익힌 것을 실험하고 의문점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물으면 이영문씨는 꼼꼼하게 답한다.
사람들은 흔히 태평농법을 '게으른 농법' '태평스러운' 농법이라고 한다. 농약 안 치고, 비료 안 주니 노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영문씨가 생각하는 태평은 곤충과 세균, 해충과 익충이 모두 '태평한 세월'을 이루는 공생을 말한다.
◇ 종자 지키기 노력 계속
이영문씨는 농사꾼이 아니라 전사 같았다.
'땅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비료로 땅을 비만에 뒤뚱거리게 하고, 농약으로 그 땅에 사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강단이 배여 있었다.
"30년 전 만해도 농가마다 종자를 보관했어요. 지금은 매년 종자를 사다 씁니다. 멀쩡하던 우리 종자를 다 없애버리고 외국에서 종자를 수입하는 지경입니다. 사다 쓰는 종자를 심어 열매를 맺으면 크고 상품가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을 받아 심으면 농사가 안됩니다. 잡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작물과 교배시켜 만든 잡종이니 정상적인 번식능력이 없는 씨앗이라는 말입니다."
이영문씨는 땅을 살리고 종자를 지켜야 사람이 산다고 했다. 그가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 별학섬에는 600종의 종자를 보존,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붕어와 메기, 자라가 사는 논바닥, 속살 깊은 흙을 한삽 떠내면 누런 미꾸라지가 지천인 도랑, 메뚜기가 뛰고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논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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