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장마철 대구 저지대 주민들의 '한숨'

"비만 오면 물난리…하늘만 볼 수 밖에"

▲대구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 옆을 흐르는 금호강. 아직은 잔잔하지만 여름마다 홍수로 몸살을 앓는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대구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 옆을 흐르는 금호강. 아직은 잔잔하지만 여름마다 홍수로 몸살을 앓는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장맛비가 예고된 21일 오후 80여 가구가 띄엄띄엄 사는 대구 북구 서변동, 일명 고촌마을. 금호강과 도로둑을 사이에 두고 부락을 이뤄 사는 주민들에게 홍수는 연례행사다.

"태풍이 사나흘씩 오면 허리까지 물이 차려나 몰라. 물이야 비가 올 때마다 넘치는 걸.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지 뭐."

마을주민 손명희(70·여) 씨는 걱정스런 표정은커녕 발목까지 물이 차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비가 오면 마을 남자들이 조야동 둑까지 나가서 내다본다니까. 거기서 물이 넘어오면 마을사람들한테 연락을 해줘. 근데 3년 전인가 비가 많이 온(2003년 9월 태풍 '매미' 내습) 뒤로는 물이 크게 넘지는 않았어."

금호강 물을 따라 이어진 북구 노곡동도 사정은 마찬가지. 아버지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마을주민 이길운(47) 씨는 마을입구 저지대가 물에 잠기지 않는 여름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장마철에 비만 왔다하면 잠겨 배수펌프를 설치해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는데 돈이 많이 드는지 어떤지 반응이 없네요." 이 씨는 "배수펌프시설을 하는데 20억 원은 족히 들 것이라는데 올해도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겠느냐."고 기대도 하지 않는 눈치다.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 부근 상인들도 장마철이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고 했다. 금호강 범람시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부근 40여 가게 상인들은 '큰물'만 닥치지 않길 바랄 뿐 뾰족한 대책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시는 21일 여름철 장마와 호우에 대비해 인명피해 우려지역 15곳을 지정, 대피장소를 마련해 해당주민들에게 알렸지만 해당지역 주민들은 '늘상 겪는 일'에 이골이 난 지 오래인 것처럼 보였다. 대구시가 지정한 15곳은 주로 북구와 달성군에 있는 마을들로 금호강과 낙동강을 끼고 있다. 특히 홍수만 나면 침수지역으로 언론에 단골로 오르내리던 마을들인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지난해 이주보상비를 받고 정든 땅을 떠났다. 일부 남아 있는 가구도 있지만 이들 역시 지난해 뿌려놓은 작물들만 수확한 뒤 떠나겠다고 달성군과 약조했고, 낙동강이 한눈에 보이는 달성군 구지면 징리·오설리 주민 22가구는 이미 모두 정든 고향을 떠났다.

대구 북구 노곡동에서 만난 초로의 한 마을 주민은 "우리가 천재를 우째 막겠능교. 인재만 아니면 되는기라. 금호강은 영천댐 수문 조절만 잘해주면 올여름도 별 탈없이 지나간다카이. 근데 오만데서 기상이변이 일난다는데 올여름에는 어떨지 모르겠네."라며 잔뜩 찌푸린 하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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