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歌曲

노래는 음률이 있는 詩(시)다. 음악이자 문학이다. 아름다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 우리 눈 앞에는 보이지 않는 풍경들이 펼쳐지곤 한다.

19세기말 근대화 물결을 타고 국내에 도입된 서양 음악은 우리 민족 정서와 어우러지면서 '歌曲(가곡)'이라는 새로운 토착 클래식 음악을 낳았다. 일반 클래식 음악의 귀족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친근하고 다정다감하며 쉬운 곡들이 대부분이다.

주로 시인들의 고운 詩(시)에 노래의 옷을 입힌 것들이라 한 구절 한 구절이 그토록 아름답고 정겹고 소박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쓸쓸함과 그리움의 정서를 자아내게 한다.

日帝(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고통과 설움, 한국 전쟁의 상흔, 급속한 근대화 와중에서 겪어야 했던 온갖 희로애락의 궤적이 그 속에 절절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로 시작되는 '바위고개'(이흥렬 작사'작곡)는 떠나간 님과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운이 이중 구조로 얽혀 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의 '이별의 노래'는 한국 전쟁 중 김성태 선생에게 박목월 시인이 직접 건네준 시를 산골에서 촛불 아래 오선지도 없이 쓴 곡이라고 한다.

지난 5월 타계한 김순애 작곡 '4월의 노래'(박목월 시)는 해마다 목련꽃 필 즈음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이다. 박화목 시, 윤용하 작곡 '보리밭'은 도회인들에게 봄날 훈풍에 흔들리는 청보리의 물결을 떠올리게 해준다. 여름 하늘을 보면 김용호 시, 김동진 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부르고 싶어진다.

가곡에는 이 땅의 山河(산하)와 고향, 옛님, 우정 등 그립고 소중한, 때로는 가슴 에이게 하는 단어들이 녹아들어 있다. 유행가 못지 않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산업화 소용돌이 속에서 아이들이 동요를 잃어가듯 청년들과 어른들은 가곡을 잊어가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 가곡진흥을 위한 토론회'는 위기에 처한 가곡을 새롭게 부흥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참석한 98세의 원로 작곡가 김성태 선생은 '2008년을 가곡 부흥의 원년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낭독했다. 겨레의 정서와 함께 해온 가곡을 새롭게 살리려는 노력이 아름다워 보인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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